하루라는 자의식

by 진경


아침마다, 처음 사는 사람처럼 깨어난다.

몸이 먼저 일어나기도, 생각이 먼저 깨어 기다리기도 한다.

대체로는 생각이 앞서 있다.

오늘이라는 낯선 시간을 어떻게 다룰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은 채로.


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어제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는 일.

습관처럼 마시는 물 한 잔은 각성의 도구라기보단 하루의 진입로—투명한 경계선, 꿈과 현실 사이의 다리.

어떤 날은 그 물이 어제의 언짢은 감정을 씻어내고,

어떤 날은 목구멍 너머로 사라질 뿐.

그래도 마신다. 목마름보다 의지에 가까운 행위로.



신문을 대충 펼친다.

‘대충’이라는 말엔 의도가 있다.

읽는다기보다는, 세계가 어떤 리듬으로 신음하는지 귀 기울이는 것에 가깝다.

종이 위에 인쇄된 사고와 해석,

그리고 기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광고들 사이로

실금처럼, 아니 상처처럼 벌어진 틈이 보인다.


사건과 사람, 제도와 실패, 그 틈새에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숨어 있다.

그 침묵에 잠시 귀를 기울인다.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속보를 넘기고, SNS를 스캔한다.

두 세계는 서로 모순되면서도 교차한다—한쪽에선 깊이를, 다른 쪽에선 속도를 요구하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가

그 겹치는 지점에서 입장이 형성된다.

정보가 아니라 태도를 구성하는 감각,

그 감각이야말로 하루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나침반.



커피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시간—이른 아침 유일하게 집중하는 의식.

물의 온도, 분쇄도의 균형, 손목의 원을 그리는 속도,

이 사소한 변수들이 놀라울 정도로 집중력을 불러온다.

뜨거운 물이 원두를 적시며 부풀어 오를 때

세계가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는 착각을 허락한다.

커피는 각성이 아니라

정신을 한 점으로 모으는 작은 주문.


정해진 출퇴근이 없는 삶에서는

하루의 경계를 스스로 그어야만 한다.

이 작은 의식은 혼돈 속에서 선을 긋는 도구—

첫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



일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책상 앞에 앉는다.

프리랜서의 삶은 자유롭지만, 질문투성이다.

무엇을 읽고, 왜 쓰며, 누구를 향해 말을 하는가.


모니터 화면의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때로는 날카롭게 집중하고

때로는 허공을 응시하며

때로는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가혹해진다.


그래서 하루의 목표는

단순해졌다

더 단순해졌다

그냥 단순하다.


‘부끄럽지 않게 집중했는가.’

그 기준조차 날마다 바뀐다—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 사이에서

적당한 합의점을 찾아가며.



점심은 하루의 중심이라지만,

나는 그 중심이 종종 흔들리는 순간을 목격한다.


가능하면 간결하게, 조화롭게 먹으려 한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신선한 과일을

접시 위에 색깔별로 배열하며

균형이라는 이름의 작은 안정을 흉내 낸다.


하지만 때로는 그마저도 버겁다.

간편하게 때우거나, 아예 거르기도 한다.

허기를 외면한 대가로 찾아오는 것은

속이 빈 감정보다, 죄책감이다.

허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삼키는 감정.


삶은 예정된 리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너진 중심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다시 중심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일.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덜 잔인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훈련이다.



바람이 있는 날에는 걷는다.

바람이 없는 날에도 걷는다.

격렬한 운동보다 느리게 걷는 편이 더 오래 남는다.


동네 골목을 돌거나 가까운 산길에 발을 맡기면서

생각보다 감각에 더 집중하게 된다.


플라타너스 잎이 반짝이는 소리.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빛이었나)

흙길이 발바닥을 밀어 올리는 촉감. (지구가 나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증거)

햇살이 뺨을 스치며 남기는 온도. (누군가 살갑게 건드리고 지나간 자국)


이 세계는 머리보다 몸으로 더 잘 이해되는 구석이 있다.

산책은 해답을 주진 않지만, 질문의 방향을 살짝 틀어준다.

무의미하게 걷고 돌아올 때조차, 그 무의미함이 의미가 되어 있다.



해가지면 책을 읽는다.

읽는다는 행위는 언제나 능동적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문장은 곧장 가슴을 두드리고,

어떤 문장은 눈 위를 미끄러져 지나간다.

어떤 문장은 목 깊숙이 박혀 며칠을 아프게 한다.


그 차이를 분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마음에 박힌 문장을 조용히 베껴 적는다.

오늘 하루에 진짜 말을 건 문장은

어쩌면 그것 하나일지도 모르니까.



습관처럼 일기를 쓴다.

아무도 보지 않을, 오직 자신만을 위한 기록.


“오늘도 무사히 건너왔다.” (무사하지 않았지만)

“오늘도 잘 견뎠다.” (견디지 못했지만)

“괜찮았다.” (괜찮지 않았지만)


그 말이면 충분할 때가 있다.

잘 산 하루란 반드시 뭔가를 이룬 하루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던 하루—

후회와 만족 사이 그 좁디좁은 틈새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은 하루.



자정이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든다.

무언가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기로 한다.

오늘은 오늘대로, 내일은 내일대로.


삶은 완결이 아니라 반복으로 완성된다.

조금 흐트러져도 괜찮다고, 어둠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그리고 매일 아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기적이

나를 다시 살게 한다.


내일도 또 한 번, 처음 사는 사람처럼 깨어날 테니까.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