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세계를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세우는 방식이다. 이 시는 말이 도달하기 전에는 사물은 있었지만 세계는 아니었다는 인식, 그리고 말해지는 순간 존재가 생긴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명명의 기원’은 그런 생각을 가장 원초적인 시간에 대입해본 서사다. 세계를 처음 이름 붙이는 행위는 단지 표현이 아니라 질서의 시작이고, 우리가 현실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만든 첫번째 약속이기도 하다. 말은 처음부터 철학이었고, 정치였고, 공동체의 기초였다.
‘세계관의 조직화’에서는 언어가 단지 이름의 목록을 넘어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파시스트의 감옥에 갇힌 철학자’는 물론 안토니오 그람시를 떠올리게 하지만, 특정 인물을 말하기보다는 억압의 구조 안에서도 언어를 통해 사유를 지속했던 모든 지식인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람시가 강조했던 생활 언어, 습관의 문법, 감성의 조직화 같은 개념들이 시의 흐름에 녹아 있다. 말이 체제를 감염시키고, 문장이 제도의 오래된 벽을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
‘아직 오지 않은 문장’은 말해지지 않은 언어, 금지되었거나 사라진 언어에 대한 상상이다. 동시에 새로운 말과 질서가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말이 먼저 도착하고, 그 다음에 세계가 따라온다는 아이디어는 시 전반을 통과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이미 있는 언어가 아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언어에 대해 시는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는 언어를 사유의 재료로 삼은 하나의 서사 실험이다. 동시에 그것은 언어에 대한 찬양이라기보다, 언어에 대한 비판적 헌사이며 창조적 기획이다. 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재현이 아니라 구성이다. 우리는 더 이상 말해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말의 구조를 발명함으로써, 존재의 가능 조건을 다시 쓰려는 시도에 착수한다. 『언어의 기획』은 그 선언이자 사유의구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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