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읽지 않는다>

by 진경


나는

시를 읽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

가 아니라

모두가 시간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바흐보다 빠르고

릴스는 고전보다 자극적이며

나는 이 세계에

댓글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니까 시는 이제

불편하다

느려서가 아니라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

모든 것이 흩어지는 시대

나는 자아를

태그로 붙이고

프로필로만 살아간다


그런데 시는

그 태그를 뜯는다

그 이름을 묻는다

너는 누구냐

진짜 누구냐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

시는

나에게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게 말이냐고 따져 묻는다

모든 설명을 걷어내고

감정만 남겨두고

그 감정을 버텨보라고 말한다

*

시는

사랑도 혁명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문장이

자꾸 부서진다

나는 그 부서진 문장을

나의 하루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주워 읽는다

*

시는 무겁다

왜냐하면 가볍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나는 매일 비문으로 살아간다

기승전결이 없는 삶

주어와 술어가 엇갈리는 삶


그래서 시는

완결이 아니라 중지다

결론이 아니라 의문부호다

시가 나에게 묻는다

이게 삶이냐

그래도 계속 살아야겠느냐고

*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한 문장을 쓴다

바람이 분다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