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 앞에서>

by 진경


어머니의 슬리퍼가 현관에서 기다린다

발가락이 남긴 움푹한 자국, 그 안에

먼지처럼 쌓인 말들

아직도 문턱을

넘지 못한다

*

지하철 2호선 오후 세 시,

임신부석에 앉은 할머니의 무릎 위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이름이 내려앉는다


모든 정거장은

누군가의 첫 번째 이별이다

*

편의점 화장지 코너에서

나는 어머니가 늘 사 오던 12겹짜리를 들고

계산대 앞에서 떨리는 손을 본다


봉투 필요하세요?


나는 대답 대신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진다

*

새벽 네 시, 옆집 개가 짖는다

나도 함께 짖고 싶지만

입 대신

눈물이 먼저 나온다


창문 너머로

새벽이 온다, 어김없이

*

—그래도 우리는 기다린다

슬리퍼가, 동전이, 새벽이 그러하듯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