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Los Angeles), 줄여서 엘에이 (LA).
스페인어로 “천사들"이라는 뜻을 담은 그 찬란한 이름을 누군가는 정직한 한국어 발음으로, 또 다른 사람은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정작 스페인어를 원어로 사용하는 누군가는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로스앙헬레스”로 발음하기도 하는 후덥지근한 노란색 도시.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에게 엘에이는 처음부터 쭉 노란색이었다.
대학시절 거주한 샌디에이고에서 세 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하면 맞아주던 유니언 스테이션의 외벽. 노을을 구경하러 간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 온 구름을 태울 듯하다가 수 초 안에 사라져 버리던 태양.
혹은 해당 도시를 주제로 한 뮤지컬 영화에서 여자 주연 배우가 입은 원피스가 다 노랗게 빛났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찌 됐든 다행히도 노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이곳에서 몇 년째 살며 스스로도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반대로 샌디에이고로 향할 일이 없으면 굳이 유니언 스테이션 근처에 발을 들이지 않고,
산타 모니카보다는 마리나 델 레이나 맨해튼 비치처럼 조용한 부촌 바닷가를 즐겨 찾고,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을 영화 속 장소에 데려가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엘에이 왜 이렇게 더러워?”
길거리에 오줌 냄새가 진동하고, 고속도로에서는 차들이 다 100킬로 넘는 속도로 쌩쌩 달려 무섭고, 노숙자도 너무 많고… 아무튼 분위기가 영화랑은 다르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기는 하다.
근래의 엘에이는 도시 전역이 도시 미관, 노숙자, 약물 중독, 치안 관련해서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나 또한 밤마다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아, 이러려고 가족들 떠나 비싼 돈 내고 타지 생활 하나'하는 허탈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때는 왠지 엘에이를 떠난 미래의 내가 그리움을 못 이겨 돌아와 그 순간을 다시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소중하다. 꼭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깨달을 때 같다. 왜, 단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소개팅 상대보다 큰 목소리로 떠들고 내 앞에서 당당하게 이빨에 낀 고춧가루나 립스틱 자국을 훔치는 연인이 더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영화나 드라마에 예쁘게 꾸며 등장시킨 엘에이가 아닌, 매일 마주치는 더럽고 위험한 엘에이가 무엇이 그리 특별하냐 물으면 보여줄 수 있는 기록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