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케이 Nov 02. 2024

엘레베이터에서 시작되는 인사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부산스러운 공기가 감돈다.

Flower St

창밖에선 주로 간밤에 노숙자들이 대문 앞을 서성인 흔적, 쓰레기라던지 오줌자국 같은 것을 지우느라 호스로 물을 뿌리고 청소기를 돌리기 바쁜 아파트 직원분들의 소리가 들린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엘에이 다운타운 중심가에 위치해 있는데, 다운타운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그냥 시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중에서도 이름이 참 예쁜 Flower Street, 말 그대로 꽃길 위에 지어진 아파트다. 실제로는 앞서 언급한 노숙자들처럼 꽃보다 먼저 이목을 끄는 것들이 너무나 많지만 다운타운 안에서 치안이 나쁜 편은 아니다.


공중에 치익- 하고 흩뿌려지는 물줄기나 윙윙 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방을 나선 후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커피를 내리는 것이다. 아직도 맛은 잘 모르지만 스무 살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남들 따라 습관을 들인후로 괜히 아침에 아이스커피 한 잔씩 챙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집에 머신을 장만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백수에 등극한 지금은 아침에 서둘러 향해야 할 장소가 없기 때문에 커피에 곁들일 만한 샌드위치나 오믈렛까지 간단히 만들어서 먹고는 한다.


그러나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석사생 신분으로 공부와 조교 일을 병행하던 때는, 9시 전에 집을 나서는 이웃들과 엘리베이터에서 그리도 많이 마주했더랬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쭉 늘어선 컨설팅 펌으로 출근하는 양복 차림 직장인들부터

스웻셔츠, 브라탑, 조거팬츠나 레깅스를 깔로 맞춰 입고 운동 가는 복장의 몸 좋은 멋쟁이들,

그저 실외배변 하는 개를 산책시켜야만 하는 졸음 가득한 얼굴의 사람들,

그리고 가끔 부모님 손을 잡고 자기 몸만 한 책가방을 맨 채로 등굣길을 나서는 어린 친구들까지.


어느 누구를 만나든 우리 집이 위치한 7층에서부터 1층까지 같이 내려가는 동안에 열에 아홉은 그날의 첫 대화 상대가 된다.


"Good morning. 좋은 아침이에요."


미국,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에서 스몰톡은 빼놓을 수 없는 문화다.

어릴 때는 한국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어른들께 “안녕하세요" 인사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미국의 스몰톡은 늘 ‘스몰'하지만은 않다.


직장인들과는 서로 얼마나 피곤한지에 대해 농담하며 “월요팅"을 외치기도 하고,

의도치않게 맞춰입은 옷 기념사진ㅋㅋㅋㅋ

멋쟁이 운동인들과는 패션 칭찬이나 헬스장 정보를 공유하고,

견주들에게는 강아지가 몇 살이냐, 인사해도 되냐 꼭꼭 물어보고 허락 하에 쓰다듬는 편이다. 그러다 운이 좋게 철이 덜 든 강아지를 만나면 얼굴에 촉촉한 키스를 받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은 주로 수줍음이 많아 부모님과 대신 인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얼마 전에 스티로폼과 이쑤시개로 사이언스 페어 과제를 만든 한 친구에게는 먼저 멋있다고 칭찬한 데에 대한 답으로 “Thank you (감사합니다)”와 미소를 받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때, 알아서 지켜야 하는 불문율은 초면에 너무 무겁거나 예민할 수 있는 주제, 예컨대 정치나 종교, 외모에 대한 언급은 절대로 삼가는 것이다. 특히 외모는 아무리 칭찬하는 내용이더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불편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정 하고 싶다면 “얼굴이 작아요", “눈이 예뻐요" 같이 생김새 자체에 치중된 말보다 “옷이 너무 잘 어울려요", “그 색 정말 잘 받는 것 같아요"처럼 상대가 그날 신경 썼을 법한 부분을 알아보는 말을 건네는 것이 좋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러한 암묵적인 약속을 몰라서 낭패를 본 타 문화권 사람들이나 내향적인 성향의 많은 미국인들까지 ‘불필요’한 스몰톡에 에너지를 쏟는 게 힘들다, 불편하다 고백한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스몰톡이 면접 자리, 직장에서까지 필수적인 대화 패턴으로 자리 잡았는가 알아보니,

미국만큼 다양한 인종,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나라에서, 그것도 총기소지가 합법인 이 험한 곳에서

처음 보는 사이에 '나는 당신에게 적대감이 없어요' 알리고 친근감을 높이는 매개체로 채택됐으리란 가설이 많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천성이 말이 많고 경계심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스몰톡이 진심으로 즐겁다.

그저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열심히 사는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 받는 기분이다. 그래서 내가 엘에이에서 온기를 느끼는 첫 공간이자 이유로, 한 다운타운 아파트의 2평 조금 안 되는 엘리베이터 안을 꼽아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