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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Apr 26. 2021

50만 원을 쓴 줄 알았더니 100만 원을 썼을 때

만 원을 만 원답게 쓴다고 생각하는가, 나여

 월 100만 원도 거뜬히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에다가 그렇게 썼는지 기록해본 적도 분석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냥 생각하지 않고 썼습니다. 그러다가 그 달의 청구금액이 나오면 '아니, 내가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썼데?' 하고 뱅킹 앱에 들어가 봅니다. 놀랍게도 하나하나가 다 직접 쓴 게 맞아서 소름이 돋습니다. 돈을 많이 쓰는 것도 문제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많이 썼는데도 그만큼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구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100 원을 썼다고? 50 원을   아니라?'라는 생각이 들어 어리둥절했습니다.  마디로 돈을 가치 없게 썼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



 그렇게 쓴 돈의 규모를 따져보면 막상 큰돈을 쓴 건은 별로 없습니다. 통신비, 전기요금, 가스요금, 관리비, 경조사 관련 지출 등을 제외하면 다 만 원, 이 만 원 정도의 결제건입니다. 퇴근길에 '오늘 고생했으니까 스콘 하나 사 먹을까?'하고 쓴 오천 원, 주말에 산책을 나갔다가 '이렇게 나온 김에 맛있는 과일이라도 사서 들어가야지' 하고 쓴 만 원,...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만 원짜리 지출을 차곡차곡 쌓아 100만 원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지출내역을 따져보면 주로 먹는 것에 대한 지출입니다. 그때는 제가 어쭙잖은 보상심리를 갖고 있을 때입니다. 지방근무를 할 당시 회식이 일주일에 3-4회 정도로 잦았기 때문에 굳이 별다른 음식을 사 먹지 않아도 화려한 안주와 술로 하루에 섭취해야 할 칼로리의 수 배를 섭취하곤 하는데, 주말에는 회식으로 먹는 것과 이건 또 다른 거라며 합리화하면서 뇌는 즐거워하고 몸은 아우성을 치는 음식들을 사 먹었습니다. 당시 근무를 하던 부산에서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교류의 목적은 하나도 없는 식사를 이어나갔습니다. 서울로 복귀하는 날만 기다리며 회사를 다니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소비와 먹방으로 보상을 받으려 했습니다. 이 시간 동안 자기 계발을 꾸준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건 지나고서야 하는 이야기일 뿐,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을 듯합니다.

 물론 큰돈을 가치 있게 쓴 때도 있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 해에는 스페인 여행도 다녀왔고, 베트남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가서 지출했던 것은 그 액수가 크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비습관을 되돌아보면 일상에서 자잘하게 자주 썼던 돈은 이제 와서는 꽤 아깝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행에 가서 쓴 큰돈은 좋은 경험이 되었지만, 일상에서 자잘하게 쓴 돈은 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깨달았다는 점?



그래서, 어쩌면 좋을까



 여기에 대한 처방으로 저는 자기 연민을 떨쳐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홧김에 쓰는 비용, X발 비용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월급을 저당 잡히지 않으려면 일상을 잠식하고 있던 정신을 개조해야 한다는, 다소 거창한 생각을 한 것이죠. 웃기긴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쓰는 비용이 거의 매일 발생하고, 매주, 매달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얕봐서는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제 정신머리에 자기 연민이 자리잡음으로써 비롯되는 여러 문제가 있기도 했고요.

 그래서 운동을 하고, 산책을 나가고, 책을 읽었던 것이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으려면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뻔한 것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괜찮은 일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소비를 이런 활동들로 대체하는 것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만, 일부는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몸짱이나 현자가 되지는 못했으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자잘한 소비를 통해 얻었던 가짜 만족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 지출내역을 토대로 소비 거리를 하나씩 쳐내거나 한도를 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곤 합니다. 저 또한 그 방법도 잘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소비는 나의 행동이고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소비를 통해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쓸수록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허무하게 느껴지고 한숨이 나오도록 반성을 하게 된다면, 오버스럽다 싶어도 한 번 시도해볼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소비를 하는지, 소비를 해서 얻은 감정은 무엇인지 소비의 원인과 결과를 생각해보고 조치를 취하는 것을요. 저는 그렇게 하고 나니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억지스러운 소비의 거품을 조금은 잠재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거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먹고 싶어서 먹는 것, 쓰고 싶어서 쓰는 것과 보상을 받고자 먹고 쓰는 것을 서로 구분해야 하는 건데, 지금은 50만 원을 40만 원 정도의 가치로 쓰는 것 같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50만 원을 50만 원답게, 5천 원도 5천 원답게 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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