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부산까지
나는 내가 성숙하다고 생각해왔고, 성숙하다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뭉근하게 즐길 줄 아는 것이라고도 생각해왔다. 그런데 부산에 혼자 산 지 2년이 채 안 되었고, 1년에 남자친구와 친구를 보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내년에도 부산에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섞인 체념에 휩싸인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너무 서러워져서 눈물이 났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나를 웅크리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 외롭지 않냐고 물어올 때, "외롭지 않은데?" 할 때마다 사춘기 청소년처럼 또래가 주는 여운을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그간 남자친구에게는 힘든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서 짜증 났다, 진짜 나쁘지 않냐 등 현상만 말했고, 진지하게 우울하다고 한 적은 없었다. '우울'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내게는 금기어 같아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게 할 게 뻔한 것 같아서 소리 내어 말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그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거라는 걸 알아서 좀처럼 티를 내진 않았는데, 어쩐지 그날은 참기가 힘들어서 나 너무 우울하다고, 목소리 듣고 싶은데 통화해도 되냐고 물었다. 3초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허어어어엉 오빠......."
"나 부산 갈게. 간다?"
"안 돼... 너무 멀잖아..."
"괜찮아, 오라고 말만 하면 가. 오라고 해 얼른."
남자친구는 운전면허를 갓 딴 상태였는데, 장거리 운전을 하게 하는 게 옳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다음날 바로 다시 서울에 가야 하는 일정이라 몇 번을 번복하다가, 그 정도인데 어떻게 안 가냐고, 장거리 운전도 해보고 싶었다고 해서 결국 알겠다고 했다.
서울, 오빠의 집에서 첫 번째 휴게소까지, 첫 번째 휴게소에서 다음 휴게소까지, 그리고 우리집까지 연락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애가 탔지만 전화를 한 시점으로부터 7시간 뒤에 그는 나에게 도착했다. 호시탐탐 알아보다가 면허를 따자마자 뽑은 중고차를 타고, 내가 신입사원 연수 때 샀다가 입을 일이 하나도 없어서 버릴까 하다가 그에게 준 보라색 널디 트레이닝복을 입고, 내가 사준 정신 나갈 만큼 화려한 조던 운동화를 신고, 처음 해보는 장거리 운전에 눈이 새빨개진 채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행복하고 고마워서. 멋지기도 하지만 왠지 내 눈에는 귀여워 보이는 모습으로 주차를 한 남자친구는
"어때? 찐 사랑 인정이지?" 하고 웃었다.
사랑하는 것도, 받는 것도 먹을 것으로 대표하는 나는 그를 끌어안고 외쳤다.
"응!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다!!!"
하지만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밥을 대충 끌어다가 김치를 내놓고 냉동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녹였다. 달걀말이도 했다. 달걀프라이를 할 것을 좀 더 귀찮게, 좀 더 많은 그릇과 집기를 써서 달걀말이를 하는 것이 그 순간에는 내 사랑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소박하게 한 상을 차린 나는 늘 그래 왔듯이 생색을 냈다.
"오빠, 달걀프라이가 아니라 달걀말이를 하는 거는 진짜 최고의 표현이야."
"어휴 그럼~ 나는 맨날 햇반 먹어서 직접 지은 밥 먹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오빠의 장거리 운전 무용담을 화제로 쿡쿡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솔직히 나 걱정 안 하지?"
"응."
"그럴 줄 알았어."
"잘하고 있잖아."
나는 여전히 내 자신에게 엄한 성격을 어디 주지 못해서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잘 살고 있다고는 생각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서로를 배려하다가 끝내 만나는 것으로 결론 나버린 우리의 모습을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댈 줄 아는 것이 성숙임을 깨달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