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니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서 계산하기가 애매해진 것도 있고, 기념일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연애를 할 때에는 100일도 챙기고, 200일도 챙기고, 300일도 챙겼다. 선물도 얼마나 고심해서 골랐던지. 그때의 우리는 참 귀엽고 풋풋했다. 이건 우리가 아니라 순수하게 나의 이야기인데, 나는 남자친구가 나의 첫사랑인데다가 남자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그만큼 불안감도 컸다. 그때 나는 '100일이 지나면 200일은 언제 오나, 200일이 지나면 300일까지도 당연히 사귀고 있겠지? 400일도 올까? 오겠지? 와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념일이나 디데이를 챙길 때에 쓸 법한 어플은 참 많았다. 나는 폰 화면에 늘 둥둥 떠있는 그 숫자를 보면서 약간의 부담감을 느꼈다. 시간이 우리 사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착각하던 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친구가 나와 만나기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와는 내가 알기로 거의 1년이 되는 시간을 사귀었기 때문에, 나도 빨리 1년을 넘기고 싶었다. 그래서 사귄 날을 헤아리는 숫자 그 자체에 알게 모르게 집착했다. '언제 세 자리가 될까, 언제 365를 넘을 수 있을까, 빨리 네 자리가 되면 좋겠다, 그 정도면 누가 봐도 오래 사귄 거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념일이 리프레시하는 느낌을 준다고 하던데, 나는 그렇진 않았다. 사실 데이트라는 것이 하나하나 새로운 느낌을 주는 때는 빠르게 지나가게 마련이며 결국 함께 소중한 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100일이 카운트될 때마다 무슨 데이트를 하고 무슨 선물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약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마치 학기가 무사히 끝나길 바라는 열등생같은 느낌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이별은 생각만 해도 싫었다. 평생 몰라도 되는 사건과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지켜보지 못하고 시간의 눈치를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데, 그때는 애가 탔다.
남자친구가 기억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남자친구가 우리의 100일을 앞두고 했던 말이 얼추 기억이 난다.
"우리 반지 맞출까?"
"반지?"
"응. 티 내고 싶어."
나는 또 그 말에 감동해가지고는 '웅, 죠아!'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우리는 당시 유행하던 반지 만들기 공방에 가서 열심히 반지를 다듬었다. 여리고 쉬운 스물 다섯, 스물하나였다.
그렇게 평생 모르고 싶었던 이별을 겪고 다시 돌아와 두 번째 연애를 하고 있는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인지하고 헤아려야 하는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같은 날들은 원칙적으로는 챙기지 않지만 선물을 주고 싶은 게 있는데 마침 때가 맞으면 선물을 줄 명분으로 삼곤 한다. 생일주간은 우리가 챙기는 유일한 기념일이다. 남자친구와 나의 생일은 8일 간격이라서 그쯤 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선물도 주고 받는다. 너와 나라는 고유한 사람이 만나 같은 시간을 흘러가는 와중에 맞닥뜨린 너의 날을, 내가 함께 축복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의미가 있다. 만약 생일을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지정하는 날을 생일이라고 칠 수 있는 정도의 유연성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하는 날이면 언제든지 축복의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숫자로 만들어진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지금이 더 자유롭고 안정적이며, 자연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낀다. 우리의 관계를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변한 것이다. 사랑을 증명하고자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관계에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던 스물하나의 나도 애처롭고 귀엽지만, 내 마음에 드는 사랑 방식에 잘 연착륙하고 있는 스물여덟의 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