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답게 솔직하게 말해봅니다
얼마 전 식사자리에서 전무님께서 물어보셨다.
"어떤 사람이 소위 말하는 '꼰대'라고 생각이 들어요?"
나는 관찰자가 정의해버린 '요즘 애들'의 틀에 나를 맞춰서 제단해버리시는 분들께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다. 개인적으로는 회사 부장님들을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 꼰대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 나는 '요즘 애들'이라는 말이 싫다. 앞서 말했듯 요즘 애들이라는 말을 이용해 일반화된 내용들에 나를 끼워 맞추고 선을 긋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요즘 애들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요즘 애들이라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솔직하다는 말이다. '솔직하다'는 단어를 네이버 국어사전에 검색해봤다.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는 뜻이란다. 회사에서의 '솔직하다'는 말의 의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거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윗분들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숨김없이 말한다'는 뜻이다. 나는 '솔직하다'라는 말이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때랑 다르게 요즘 애들은 참 솔직해."
그 말은 단적으로 하나의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 본인이 젊을 때에도 동일하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그것을 '말로 내뱉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솔직하다. 회사의 문제점이 뭐냐고 물어보시기에 회사가 잘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요즘 애들은 솔직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너희가 벌써 필터링을 하면 안 되지, 너희 때는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모습이 아름다운 거야'라고 하신다. 어째야 될지 모르겠다.
나는 업무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지만 회식에 대해서는 싫어도 못 가겠다고 말해본 적이 거의 없다. 업무 시간에는 무뚝뚝하고 서늘하다가도 회식 자리에서 무장해제되는 분들을 보면 '에휴, 내가 막내라 하는 일도 없는데 회식에라도 따라가야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술자리에서 팀장, 부장급의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옛날에 선배들이 쉬어야 되는데 술을 마시자고 하면 그렇게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는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근데 본인이 지금 그러고 있다며 나이 들어보니까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고 너희가 아재들을 이해해달라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신다. 나는 자칭 아재들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내 또래가 그러하듯 부장님들 역시 이런 면모도 있고 저런 면모도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꼰대'라는 단어도 싫어한다. '요즘 애들이 내가 이러면 꼰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시는 '안 요즘 애들'이신 분들의 자조적인 용례가 달갑지 않다. 된소리가 주는 묘한 불량스러운 느낌도 싫고. 그래서 '요즘 애들이 보기엔 꼰대 같겠지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되는 말을 들으면 안타깝다. 요즘 애들이 아무나 다 꼰대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말씀을 하시는 분이 딱히 꼰대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라떼는 말이야'도 별생각 없다. 모든 이야기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공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과거의 이야기, 경험담을 이야기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장황하고 수십 번째 반복되는 이야기의 서막으로 주로 쓰여서 불길한 징조일 때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 그분이 꼰대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회사의 과거 이야기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걸 해보셨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알겠다.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를 업무에 참고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회사 내 여러 사람을 겪다 보면 순간적으로 '꼰대'라는 단어가 확 떠오를 때도 있지만, 보통은 아무 생각이 없다. '이 분은 이런 성향이시구나(끄덕끄덕)'라고 받아들인다. 꼰대라는 말은 후배들 앞에서 괜히 주름잡는 척하는 동기들을 놀릴 때나 가끔 쓰지 흔히 걱정하는 것처럼 아무 데나 그 단어를 막 갖다 붙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차라리 꼰대라는 단어에 생각이 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시는 분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부장님께 주말에 같이 등산 가지 않으실래요 했더니 부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말에 등산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는데 꼰대 같아 보일까 봐 말을 못 하겠더라 하셔서 펄쩍 뛰면서 말씀드린 적이 있다.
"사실은... 누가 말씀하시느냐가 중요한데, 부장님께서 가자고 하시면 당연히 가죠! 기쁜 마음으로! 그 대신 다른 분들께는 비밀이고요... 부장들이 주말에 등산 가자고 해도 잘 가더라 소문만 안 나면 돼요."
이때 부장님과 갔다 온 등산은 회사생활 중 가장 기분 좋은 추억이 되었다. 결국 나도 사람을 가리고 있기는 하지만, 나를 본인들의 동의 없이 정의되어버린 '요즘 애들'에 맞춰 생각하지도 않으셨으면 좋겠고, 선배님들께서 스스로를 꼰대라고 정의하지도 않으셨으면 한다. 나를 나로, 선배님을 선배님으로 바로 바라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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