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의 사춘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인턴으로 들어와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형편 없는 지원자였습니다. 직장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그저 신나게 대학시절을 보내고 부랴부랴 취준을 하게 된 것이기도 했고, 회사나 회사가 누리고 있는 산업에 대해서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면접의 과정에서 모든 게 들통났던 것 같습니다.
면접관이 회사에서 어떤 직위를 갖고 계신지는 당연히 몰랐는데, 들어오고 보니 전무님께서 그 자리의 대빵님이셨습니다. 안 그래도 긴장한 제 앞에 네 분의 중년 남성 분들이 계셨는데, 그중 전무님은 풍기는 이미지만 봐도 회사의 지혜롭고도 냉정한 큰 어른으로 보이셨습니다. 다른 분들께서 질문을 던지시면 제가 답하는 것을 듣고 조금은 생각에 잠긴 듯('어쩌다 이런 애가 왔냐'였을까요, 혹시?) 눈을 감고 계시던 전무님께서
"영업을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라고 생각해요?"
라고 물어오셨습니다. 뻔한 대답을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중요한 것 같다고요. 그러자 전무님께서,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참을성일지도 몰라요."
입사를 하고 영업 현장을 목격하고서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영업사원은 회사와 거래처 사장님 사이에서 눈 딱 감고 싫은 소리를 이리저리 옮겨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욕받이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가 거칠어지기도 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였으면 참 좋았으련만.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했으면 수치스럽지는 않았으련만, 저는 거기에서 조급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어.. 근데 제가 사실, 참을성도 많습니다!"
면접관들께서 활짝 웃으셨습니다. 만족스러워서 웃으신 건 당연히 아닐테고, 다급하게 말하는 제가 어리고 미숙한 사회초년생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웃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또 다급하게 제가 얼마나 참을성이 있는 사람인지, 어렸을 때부터 끈기가 있어서 못하는 게 있으면 며칠 밤을 지새워서라도 해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기놀이도 그렇게 해내서 공기놀이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마음을 먹으면 한 자리에서 문제집 한 권을 다 풀어내기도 했다고요. 참을성이 많다는 표현은 무엇이며, 공기놀이는 이 상황에서 왜 나온 것인지...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상황인지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이불킥을 하게 됩니다.
결국 저는 인턴의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전무님께서는 회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저를 반가워해주셨고,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발표해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몇 안 되는 사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실 면접 때의 일이 떠오른 건 요즘 회사 다니는 것이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열정은 적응이라는 미명 아래에 정리되고, 9시부터 6시까지 늘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이 쳇바퀴를 앞으로 얼마나 반복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 때에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가 인턴 면접을 봤을 때입니다. 얼마나 어렵게 들어왔는지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마음이 그때와 같지는 않은 게 제 스스로 느껴져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당사자보다는 관찰자에 가까운 마음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고 해답을 찾아내기도 하겠지만, 요 며칠은 기운이 없네요.
회사에 들어온 지 3년째, 때늦은 사춘기에 걸려버렸습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