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에서 솔직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
입사를 한 후 나에게 가장 어려운 업무는 눈치를 보는 일이었다. 눈치를 보는 상사들의 눈치도 봐야 했다. 내가 보기에는 별 일 아닌 것 같은데 회식 자리가 끝나고 상무님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셨다며, 이 사람 때문인가 저 사람 때문인가 색출에 나선 선배님, 행사날 점심 식사 후 '상무님이 오늘 식사가 별로 마음에 안 드셨나' 하고 풀이 죽으신, 그날 식사 장소를 정한 부장님을 보면서 회사 생활을 하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거의 미어캣 마냥 선배들의 눈치를 살폈고, 할 말도 가려서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기질이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면 흐름이 어색해지고 사족이 길어졌다. 아무튼 그렇게 나름대로 눈치를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상무님께서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은
"얘는 곤조 있는 A야."
였다. 나는 곤조가 무슨 말인지도 몰라서 집에 가서 그 단어를 검색을 해봤는데, 해석을 보니 결국 곤조가 있다는 것은 똥고집이 세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모든 선배님들에게 사랑받는 A 선배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곤조 있는' 버전이 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좋은 평은 아니었다. 내 딴에는 나도 사랑받는 후배가 되고 싶어서 그분을 따라해보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어떻게 잘 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수개월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그냥 나대로 솔직하게 살기로 했다. 회사의 조직문화나 업무 방식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도 문제고, 안 솔직하게 말해도 곤조 있다는 얘기를 들을 거면 그냥 내 속이라도 편하게 솔직하게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갈 애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빙그레 웃다가 어느 날 퇴사 통보를 할 뿐이다. 회사에 진심이니까 솔직한 발언도 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확실한 캐릭터로 굳히겠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역시 나는 곤조가 있나 보다).
그래도 나만의 캐릭터를 구축하겠다는 게 영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회사 내 어린이들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계셨다. 의전을 잘하는 후배, 어른들의 생각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후배, 선배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후배는 당연히 선배들의 애틋한 사랑받는 거지만, 나는 나만의 솔직한 모습으로 아빠뻘 부장님들, 솔직함을 웃겨하는 선배들의 유쾌한 애정을 받았다. 때때로 무언가 색다른 돌파구가 필요할 때, 회사의 물이 덜 든 사람의 시선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나도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에는 회사 사람이 다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날티를 지켜주신 몇몇 부장님, 팀장님 덕분에, 바깥에서는 유교걸인 내가 회사 안에서는 좋은 의미에서 똘끼를 갖춘 주니어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의 팀장님은 썩 마음에 들지 않게 흘러가는 회의에서 일부러 나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시기도 한다. 그럼 팀장님을 믿고 솔직하게 나의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눈치를 안 보는 건 아니어서, 회의가 끝나고
"팀장님 제가 괜한 말을 했을까요?"
라고 여쭤보면,
"아니, 일부러 너 말하라고 한 거야. 잘했어. 나도 잊고 있던 걸 짚어줬어."
라고 해주신다. 뭐,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하겠느냐마는 참 좋은 팀장님이시다.
두 번째로, 눈치를 본다고 해서 상사가 다 마음에 들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꽤 자주 확인할 수 있다. 눈치를 열심히 보고 말과 행동을 다듬을 수 있는 대로 다 깎아놔도 욕을 먹는 사람도 봤고, 정년퇴임을 앞둔 한 상사가 더 위의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도 종종 목격했다. 앞에서는 당사자에게 잘했다고 하고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욕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쩌면 나도 다른 자리에서 그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눈치를 봐도 의미가 없고, 앞에서 잔소리를 듣고 개선의 여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욕을 먹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겠다 싶었다.
세 번째, 어차피 내가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잘릴 만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사회성이라는 것이 있고, 사교성도 꽤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단어 선택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상황인지 아닌지도 파악을 한다. 설마 내가 본부장님과의 식사자리에서 쓸데없는 말을 할까. 그런 자리는 아무 말 없이,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나가고 싶은 자리다. 나도 듣기 좋은 말이 요구될 때, 거래처 사장님과 술자리를 할 때에는 듣기 좋은 말만 한다.
그러니 솔직하게 살자! 는 것이 나의 의견이고 행동강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예의가 없는 것과 솔직한 것은 다르다. 사회화를 거친 어른이니 예의 없이 행동할 일은 거의 없는데, 그래도 솔직한 사람일수록 더욱 예의를 챙겨야 하는 것 같다. 나는 형식은 공손하게, 내용은 솔직하게, 듣고 있는 상사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발언이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드러내려고 애쓴다. 물론 이런 나의 노력이 잘 먹혔는지는 알 수 없고, 그냥 자기만족 중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생각을 정립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아도 정작 어른들 입장에서는 솔직한 얘나 안 솔직한 쟤나 별생각 없으실 것 같다.
역시 솔직해져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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