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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처음 잡아본 날

"손?"

by 잘 사는 진리

핸드크림은 굳이 내가 사지 않아도 선물로 많이 들어오다보니 책상 위에 쌓여있다. 쌓여있어도 잘 안 발랐는데, 코로나 때문에 손을 자주 씻기도 하고, 들숨과 날숨이 반복될 때마다 노화의 과정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제는 슬슬 인위적인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가렵고 건조하다. 그렇게 핸드크림을 바르고 있자면 꼭 생각나는 인생의 장면이 있다.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때 포크댄스, 꼭두각시인가 우렁각시인가 하는 전통춤을 배울 때나 남자애들과 손을 잡아봤지 내 남자와 손을 잡아본 건 2014년 7월 언젠가가 처음이었다. 절친한 학교 과, 동아리 선배였던 사람이 갑자기 달달한 걸 먹지 않아도 단 내가 나는 마음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남자친구다. 2014년 당시의 나는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잡는 작은 스킨십조차 상상이 안 되는 상태였다. 설렘을 동반한 약간의 기대감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손을 잡으면 어떤 느낌일까? 언제 손을 잡게 될까? 어떻게 잡을까? 내가 먼저 잡고 싶으면 어떻게 잡아야 하지? 생각보다 아무 느낌 없으면 어떡하지?'​


그날은 늦은 시간 영화를 보고 기숙사에 돌아가던 길이었다. 나는 다 큰 성인이었고 잡아줄 이유가 딱히 없는 낮은 계단이 있는 샛길에서 앞서가던 남자친구가 문득 손을 내밀며

"손?"

하고 말해왔다. 내가 오늘도 좋아하고 있는 반짝이는 물기가 있는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손!"하고 강아지 훈련할 때 하듯이 한 건 아니고, '손 잡을까? 손 잡아도 되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의 손에 내 손을 얹었다. 손이 부드러이 꽉 잡혔다. 아무 느낌 없긴 개뿔, 심장과 광대가 터지는 줄 알았다. 목구멍에 누가 설탕을 칠하는 느낌이 들었다. 붓으로 칠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프로 쳐덕쳐덕 문질러버리면서. 지금의 나는 무척이나 뻔뻔하지만 그때는 뻣뻣하게 굳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심장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었던 것 같다.​


며칠 후 이제는 손 잡는 게 조금 자연스러워졌던 날 남자친구가 그날의 감상을 이야기해줬다.

"좀 놀랐어. 너무 부드럽던데, 손."

'그 전에 사귀었던 사람 손은 덜 부드러웠나보지?'라고 폭풍 질투를 잠시 했었던 때를 떠올리며 내 손을 내가 쓰다듬어본다. '...그렇게 부드러운가....? 다 똑같지 뭐...' 또 쓰다듬어본다.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 된다. 핸드크림을 바르면서 옆 자리 책임님 몰래 설레고 몰래 웃음짓는다. 연분홍빛 우리가 또 떠오른다.


"손?"


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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