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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y 10. 2021

한 달 생활비를 35만 원으로 설정했더니

100만 원에서 35만 원으로, 3개월 후기

 한 달 생활비를 35만 원으로 설정한 지 3개월이 되었습니다. 실천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수도, 전기요금, 가스비, 통신비 등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신용카드에 연계해두고, 그 외에는 신용카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35만 원을 체크카드에 넣어두고 생활비로 사용했습니다. 약소한 후기를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주 단위 불균형이 발생한다



 한 달이 4주라고 했을 때 첫 주에 20만 원을 쓰고 2주차에 10만 원을 쓰고 3-4주차에 5만 원을 쓰고 있습니다. 다음 달 월세가 들어오면 사야지 했던 것들과 쟁여둘 식량을 첫 주에 마련하니 20만 원은 쉽게 씁니다. 그렇게 돈을 쓰다가 마지막 2주 동안에는 남은 돈이 없으니 최대한 아껴 쓰면 또 5만 원으로 어떻게 살아지긴 합니다. 그러면 그때 졸라맸던 것을 다음달 1주차에 또 느슨하게 만들게 되어서 불균형의 순환이 반복됩니다. 이게 딱히 악순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조금 균형 있게 만들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주에 몇 천 원을 남기고 월급일을 넘기면 참 뿌듯하고 가끔은 키득키득 웃기기도 하지만, 돈이 언제 어떻게 필요할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이번에도 보름을 남기고 5만 원이 남은 상태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출했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간 아무 생각 없이 샀던 2-3만 원짜리 물건들이 새삼 비싸게 느껴졌습니다. 아이패드 케이스를 하나 사는 데에도 '참, 이걸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분홍색 케이스가 보라색이 되어가니까 인간적으로 하나 사긴 해야지, 다음에는 아예 검정색 케이스를 사서 때가 타도 안 보이게 해서 10년 써야겠다'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의 저였다면 '이게 예쁜가? 저게 예쁜가? 이번엔 이거 쓰고 다음엔 저거 쓸까?'라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지요.

 경조사비는 원래도 부담이 컸던 항목이었는데, 요즘엔 더욱 그 존재감이 큽니다. 2월에는 경조사비로만 25만 원을 지출했습니다. 처음에는 35만 원에 경조사비도 포함을 하려 했는데, 감당이 안 돼서 5만 원까지만 35만 원에서 쓰고 나머지는 별도로 모아둔 돈에서 경조사비를 냈습니다.

 생일을 꼭 챙겨야 할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돌아서면 친구3의 생일이 다가왔고, 돌아서면 동기2의 생일이 다가왔습니다. 나름대로 인싸로(?) 살아온 그간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칠렐레팔렐레 얕고 넓은 관계를 펼쳤는데,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는 아주 친애하는 사람 몇몇만 챙기고 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까지는 선물을 주고 받던 사람에게 올해 선물을 주지 않으려고 하니 참 쉽지가 않더라고요. 차라리 제 생일이 먼저여서 상대방이 먼저 선물을 주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쓰는 돈도 만만찮게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지긴 하네?



 100만 원을 넘게 쓰다가 35만 원으로 살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나름대로 굉장히 굳은 결심을 했던 것인데, 35만 원으로도 살아지긴 살아지고, 초과를 해서 5-10만 원만 더 써도 훨씬 많이 쓴 기분이라서 금액을 딱 정해둔 보람이 있었습니다. 씀씀이를 반 이상 줄이면 힘들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밥 한 그릇을 어린이용 공기에 주지 않고 큰 공기에 줘도 그 한 그릇이 자기의 분량인 줄 알고 다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양과 한도를 딱 정해두면 '이것이 나의 예산이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안에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보다 더 적은 금액은 자신이 없습니다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궁색하지 않게 살 수 있더라고요. 물론 회사와 가깝고 꽤 넓은 비싼 월셋집이 마음이 궁핍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방어막의 역할을 크게 해주었고, 가끔씩 어머니께서 보내주시는 양질의 식량들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영원히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영원히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자기불신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가지 않고, 집콕을 하느라 돈을 한 번에 많이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만, 코로나가 끝나고 집순이 생활이 지겨워진다면 또 싸돌아다닐 일도 생기고 들 뜬 마음으로 이것저것 물건을 집어드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씀씀이를 줄이려고 마음 먹으면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전세로 살 때와 지출총액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월 지출액을 따지자면 더 줄어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심심해진 일상인데, 나름대로 이 상황에서 달성 가능한 퀘스트가 생겨서 즐겁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라고 또 3개월 이후에도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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