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뜯어먹을 테다 크와앙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회사 일도 열심히 하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것들 중 제가 대상에 포함 되는 게 있으면 모조리 참가하는 중입니다. 한 마디로 회사를 뜯어먹는 중입니다. 의도한 건 아니고 이런저런 것들이 다 재밌어 보이고 괜찮아 보여서 했는데, 이렇게 회사를 뜯어먹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나쁘지 않겠다 싶더라고요. TMI이지만 잘 먹고 잘 자서 정신은 없어도 건강은 잘 있습니다.
일단 팀장님께서 장려해주신 덕분에 업무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나 이벤트에는 대체로 다 참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업무 덕분에 업계에서 유명하신 분들이 진행하시는 세미나라든지 워크샵은 종종 참석하고 있고, 외부 교육에도 가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일과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머신러닝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억지로라도 사내, 사외 파이썬 교육을 받은 덕분에 그때의 경험이 머신러닝 교육을 받는 데에 도움도 되고, 업무에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로우코딩에 관한 외부 교육도 들었고, 태블로 관련한 교육도 자주 듣습니다. 기능적인 걸 잘 알진 못하지만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개발에 나서지는 않지만 개발 부서와 업무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본부 입장에서 이런 모양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샘플을 만들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훨씬 수월하더라고요.
본부 차원에서, 또는 전사적으로 진행되는 공모전이나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건 본부나 부문마다 한 팀은 참여를 해야 돼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거나, 같이 하자고 해주시는 좋은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안 하고 싶을지라도 꼭 참여를 하게 됩니다. 그런 곳에 나가면 그간 쌓아뒀던 아이디어를 모조리 뱉어내고, 기존에 시도해본 적 없는 것들을 하려고 심혈을 기울입니다. 하다 못해 발표 방식에라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를 맞이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업무 스트레스도 조금 풀리고, 공식적인 지원을 받아 이런저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희 회사는 전형적인 K-회사인지라, 어른들께서 밥을 잘 먹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십니다. 거기에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려면 고객을 알아야 하고 고객을 알려면 요즘 핫하다는 곳을 다 가봐야 된다며 등 떠밀어주시는 상무님 덕분에 힙한 곳, 핫한 곳도 가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회사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업무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회사 욕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업무 방식, 문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인생에 대해 배워가는 것도 좋은 점입니다.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 교육에도 참여합니다.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번 신청자를 받아 해외 대학 온라인 비즈니스 스쿨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팀에는 다른 분들이 이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서 이번에는 제가 신청해볼 수 있는 티켓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8월까지의 저녁 시간은 꼼짝 없이 거기에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수업은 정말 싫지만 그래도 언제 이런 걸 들어보겠냐며 열심히 듣습니다. 영어로 에세이도 쓰고 전세계 다양한 국가들에 퍼져있는 수강생들과 의견을 주고 받는 시간도 있는데, 아주 싫지만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파파고를 이용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화상회의같은 걸 하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저는 전형적인 수능형 영어를 했기 때문에 스피킹 실력이 꽝입니다. 리스닝도 별로지만 다행히 영어 자막이라도 나오고 스크립트가 있어서 파파고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습니다(사실 번역이 구릴 때도 있지만 제가 번역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독서모임에도 참여했습니다. 다른 회사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네트워킹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회사가 잘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열어준 기회입니다. 운영해주시는 분들께는 비밀이지만 사실 책을 완독하진 않았고, 발췌독을 한 다음 제 경험을 녹여 휘리릭 독후감을 쓰고 발제문에 대해 멤버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꽤 재밌었습니다. 다른 회사는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잘 되는 회사는 이게 다르구나, 잘 되는 회사도 이건 똑같구나, 이런 회사도 만나보고 싶다, 회사를 떠나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건 없을까 등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색하지만 나를 감추기보다는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일도 많이 하게 되었지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덜 모난 말로 압축하고, 도식화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브런치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글을 쓰는 일은 많이 늘어났지만 말을 하는 경험은 여전히 부족했었는데, 자유롭게 토론하고 끼어드는 분위기가 즐거웠습니다. 아닌 줄 알았는데 어느 새 회사의 문법과 말버릇에 젖어들어버린 걸 깨닫게 되어서 큰일 났다 싶기도 했습니다.
그냥 뭐든 열심히 합니다. 회사를 뜯어 먹는 게 저의 역량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해봅니다. 회사에 다녀서 좋은 점은 제가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 기회나 알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하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굉장한 저를 만들어주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