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잘 사는 진리 May 26. 2021

아빠 부장님과 멘토 부장님

감성과 이성 사이 어디쯤

 제가 좋아하는 부장님들을 보면 아빠에 가까운 부장님 또는 멘토에 가까운 부장님 이렇게 둘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극심한 남초 회사인지라 제가 한 팀에서 만난 부장님들은 다 남성분이셨습니다). 실제 호칭은 다 부장님이지만, 명확한 특성이 있으니, 임의로 아빠 부장님과 멘토 부장님이라고 칭해보겠습니다.


 두 분과는 주로 나누는 대화의 소재부터 차이가 납니다. 아빠 부장님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 생애주기 상의 이벤트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면, 멘토 부장님은 성공에 대한 이야기, 지아실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 같습니다. 연애, 결혼, 사람에 대한 고민은 아빠 부장님과, 업무, 소통방식, 자기개발에 대한 것은 멘토 부장님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아빠 부장님과의 이야기는 에세이같고 멘토 부장님과의 이야기는 논평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빠 부장님은 딸을 대하듯 저를 대해주십니다. 맛있는 걸 챙겨주시고,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시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 말씀해주시지요. 뭐든 할 수 있다 이야기해주시고요. 멘토 부장님은 회사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건설적으로 나눕니다. 일이든 재테크는 언제든지 기회가 있다고 말씀해주시고, 본인도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고 체험해보는 중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물론 그 마음이 그 마음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아빠 부장님이 보내주시는 것이 믿음이라면, 멘토 부장님이 보내주시는 건 격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등을 토닥여주는 것과 박수를 보내주는 것의 차이랄까요?


 이런 차이는 마치 온도 차이가 확실한 감성과 이성의 차이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아빠 부장님은 '그래도 좋은 회사다, 다른 회사 봐도 우리 회사 만한 곳이 없다, 네가 회사의 미래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멘토 부장님은 '우리 회사에 계속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라고 이야기 해주십니다. 제가 집을 샀다고 말씀 드리면, 아빠 부장님은 '와, 잘했다. 기특하네'라고 저의 노력을 가상하다는 듯 말씀해주시는데, 멘토 부장님은 '이제 시작이네요. 더 좋은 곳으로 업그레이드 해야죠'라고 하십니다. '저는 20대 때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대단하네요. 저도 OO동으로 진격해나갈 겁니다'라고 덧붙이시지요.


(사내 메신저, 카카오톡)

아빠 부장님: 요즘 좀 후회

: 왜요?

아빠 부장님: 너 서울 가기 전에 시간 많았는데, 좀 더 놀러 못 다닌 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 또 다시 같은 팀에서 마주칠 수도 있죠 부장님! 그때는 더 많이 데려가 주세요~

아빠 부장님: (부산에서 같이 근무하던 사무실 옥상 전경을 보여주시며) 해운대는 그대로다

: 부산에서 살아본 건 행운이었어요, 부장님

아빠 부장님: 다음에 너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래라 아이야 내가 해운대에 좀 살아봐서 아는데 ㅋ 거긴 너무 좋은 곳이라고. 늘 즐겁게 살아. 화이팅



멘토 부장님: 선임님처럼 아직 젊은 분과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업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시너지가 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저도 OOOO에 대해 생각했는데, 선임님이 바로 이야기하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어디 가서 이렇게 젊은 분과 대화를 하겠어요. 업무 환경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 책임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받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저도 그때 막 책임님이랑 대화하면서 창의력이 퐁퐁 솟는 것 같았거든요.

멘토 부장님: ... 다음에 우리 와이프 만나면 그런 이야기 좀 해주세요. 맨날 '당신은 너무 말을 많이 해'라고 잔소리 듣거든요.

: 아하하 알겠습니다ㅎㅎ


 이제는 꼬맹이라고도   없는 3년차 병에 걸린 선임에게 이런 부장님들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을 하시죠, 선임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