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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Feb 09. 2022

집착할수록 무너지는 일과 삶의 균형

당신의 워라밸은 무엇인가요?

 면접 준비를 할 때 예상 단골 질문이 있었다.

 "지원자는 워라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회사 일을 위해서라면 저녁 시간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하는 게 모범 답변이었던 것 같다. 근데 또 너무 회사 일이 지상 최고의 과제라고 이야기하면 진실성이 반감되기도 하고 요즘 애들의 패기가 없어보인다고 해서 이 정도로 갈무리 했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워라밸을 고집하기보다는 일 자체를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입사 전에는 실제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함부로 떠들어대던 워라밸에 대한 생각은 입사 후에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워라밸을 꼭 지키라고 했던 선배들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직장으로부터 나를 분리하거나 독립시키기는 쉽지 않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 하루의 반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6시간 자고, 출퇴근 준비와 통근에 2시간 정도 걸린다 하고, 회사에서 보통 9시간은 보내니 긁어 모아서 확보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은 약 7시간이다. 회사에 있는 시간과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서 보내는 시간이 나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보다 길다. 거기에 야근이나 회식, 일과 후 연락 등까지 있으면 지독히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진다.


그러나 워라밸에 집착하면 할수록 일과 삶의 균형은 어그러졌다. 내 워라밸은 철저히 '회사를 안 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쉼'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시간은 나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저녁시간이 없는 생활을 하는 동안 워라밸에 심히 집착하고, 어긋난 보상심리에 허덕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 야근이 아닌 회식이 저녁 시간을 장악해버렸다는 점에서 유독 더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퇴근 후 일상이나 주말을 딱히 의미 있게 보내지 않았다. 그 보상은 단지 내 본능이 원하는 대로, 아무런 작용도 없이 쉬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회식하면서 술 많이 마셨으니까 시간될 때 무조건 쉬어야 해'

라고 하면서 침대에 누워만 있었고,

 '회식 말고 나만의 즐거운 만찬을 즐겨야 해!'

라고 하면서 배달음식을 코스로 시켜먹었고,

 '회사 다니면서 고생하는데 이 정도도 못 쉬어?'

라는 억하심정으로 나를 방치했다.


 그게 내게 좋은 결과로 다가올 리는 없었다. 회식과 어긋난 보상심리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고서야 알았다. 내가 생각한 워라밸은 진짜 워라밸이 아니었다는 것을. 워라밸을 지키려고 하는 것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행복 또는 만족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일이란 어때야 하는지, 그 나머지 시간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회사 일을 한다는 것의 반대를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정의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여가 시간이 회사 일의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설령 반대라 하더라도 그것은 무조건적인 휴식이어야 하는 게 아니다. 삶 전체의 관점에서 내 일상이 의미 있다고 생각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확보된 시간들을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시간도 중요하다. 나만의 저녁시간이 거의 없는 회사생활도 해보고 저녁시간이 확보된 회사생활도 해봤지만, 무조건 후자가 좋다. 다시 회식을 하는 삶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퇴사를 하거나 회식에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다. 예스맨으로 살지 않을 것이다. 회사 일을 하는 시간과 나머지 시간은 그림에서 여백의 미와 같은 것이다. 회사 일은 여가시간의 여백이 되고, 여가시간은 회사 일의 여백이 되어야 한다. 들어찬 것은 들어찬 것대로, 여백은 여백대로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보탬이 되어야 한다. 여가 시간은 일만큼이나 신경을 써서 보내야 한다. 지치지 않고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들, '회사의 일'이 아니라도 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내 삶이 행복해진다.


결국 에너지의 분배가 중요하다. 과거의 나처럼 일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에도, 일을 끌어안고 있는 일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시간이 일을 하는 내 자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분배해야 한다. 나는 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회사 일 말고도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찾아서 힘을 썼을 때 비로소 회사 일을 하는 것도, 퇴근을 하고 남은 하루을 보내는 것도 행복해졌다. 그것이 운동이든, 독서든, 취미생활이든, 글쓰기이든.


Work and life balance에서의 work는 회사 일뿐만 아니라 내가 힘을 들여 하는 모든 것이다.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나만의 work를 찾아야지. 그것들로 내 삶의 의미를 찾고 나만의 균형을 잡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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