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잘 사는 진리 Jan 31. 2022

열심히 살수록 불행해진다면

원하는 것을 하고 있나요?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기나 시간을 열심히 살았다. 물론 주관적인 의견이다. 내가 살아온 시기를 크게 학창 시절, 대학생 시절, 입사 후 2년여의 슬럼프, 작년부터 지금까지로 구분한다면, 매 시기를 열심히 살았고 그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입사 후 2년여의 암흑기는 열심히 살았지만 불행했다. 똑같이 열심히 산 건데 왜 그때는 불행했을까?


 열심히 살면 그에 걸맞은 소용이 있어야 한다. '열심히 살아봤자 무슨 소용이야!'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걸 보면. 그렇다. 열심히 살면 소용이 있어야 한다. 그 소용은 심리적 만족감으로 이어져야 한다. 심리적 만족감은 내가 해냈다는 자아효능감,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금전적인 보상으로 인한 기쁨 같은 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만족스러웠다.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어떤 미래에 내가 멋지게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그게 그때의 심리적 만족감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밴드 동아리, 학생회, 학회, 봉사 동아리, 대외활동, 공모전, 학사 논문 작성, 과외 알바 등 온갖 활동을 다 했는데, 일관성은 없을지언정, 스펙으로 써먹지 못했을지언정 행복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갖고 있던 자유에 대한 갈망을 폭발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몸이 힘들었고 경제적 보상도 없었지만 '대학생 때는 무조건 해봐야지!'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 자체가 재밌었다. 그래서 아마도 '열심히 살면 재밌고 보람차다!'라는 단순한 공식을 만들어뒀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없는 채로 얼렁뚱땅 나를 뽑아준 곳에 감사한 마음으로 입사를 하고서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매여있게 되었는데, 당연히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일했고, 선배들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고, 회식 자리에도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런데 불행했다. 열심히 살아도 소용이 없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분명 열심히 사는데 왜 절망스러울까?'

 내가 세워볼 수 있는 가설은 몇 개 되지 않았다.

 '회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게 분명해!'

 '업무가 나랑 안 맞아서?'

 '회사 생활이나 사회생활이 내 마음처럼 되는 게 아니라서?'

 과도한 회식, 잘 맞지 않는 업무, 내 마음대로 뭔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회사원이라는 신분. 그 모든 상황이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시간에 대한 결정권이 나에게 없고, 남의 결정으로 내 하루를 소진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다시 괜찮아졌다. 꽤 많은 것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회식도 훨씬 덜 하고 있고, 업무도 바뀌었고, 회사 일 말고 다른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다. 그것도 내가 원하기 때문에 된 일은 아니었고 새롭게 가게 된 팀의 분위기가 그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덕분에 좋았다. 회식을 하느라 보낸 대여섯 시간 대신 계획을 세워서 살 수 있게 되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는데, 글도 쓰기 시작했고, 회사 일 말고 천 원이라도 벌어보고 싶다 생각했던 소박한 꿈도 블로그를 통해 달성했다. 제대로 된 부동산 공부도 시작했다. 그래서 희망이 생겼다. 뭔가 더 재밌는 걸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 좀 더 다채롭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만족감이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열심히 살고 불행해지지 말 것. 회사 밖에서도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하루에 최소 하나씩은 꼭 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