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리고 여기의 나에게
그저께는 운동을 할 때 집중이 안 되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 가면 업무에 대해서는 신경의 스위치를 끄는 쿨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은 스위치를 꺼도 상관없고, 하다 보면 해결되는 일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이번에 진행한 프로젝트는 우리 본부에서 가장 중요한(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프로젝트 중 하나라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있고 그 배경이나 방향성 설정부터가 다소 복잡하다. 아예 새로운 형태의 업무 프로세스를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고, 기존의 평가방식이라든지, 일의 진행방식을 다 바꿔야 한다. 그래서인지 부담스러워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몸은 집에 와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정신은 계속 '이거 도대체 어떡하냐, 나 못하겠으니까 월급 반납한다 할까? 아니지... 본부장님이 시키신 거잖아!'라는 생각을 반복하며 프로젝트가 최악으로 흘러갔을 때를 가정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니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는데, 운동하느라 힘들어서 일그러진 게 아니라,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그러져 있는 상태였다.
스스로를 계속 단속했다. '이렇게 고민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부딪혀! 쓸데없는 감정 소모하지 말고!' 그러다 보니 결국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현재일 뿐, 자꾸만 과거에 얽매여 있거나 미래의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내가 반복했던 생각을 돌이켜봐도 어떡하지 뿐이고 별로 생산적인 생각이 없다.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를 세우는 것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면 '아... 어떡하지? 잘못되면 어떡하지? 잘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주로 든다. 업무는 나 혼자만 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미 없이 걱정을 계속하는 것이다. 의사결정권도 내게 없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도 않을 것이고 프로세스 정립부터 현업에의 적용, 그 후의 피드백을 거쳐 끊임없이 수정될 것이다. 비단 회사 일 뿐만 아니라 내가 크게 걱정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다. 영향의 범위가 넓고 과정이 복잡할수록 걱정의 강도와 빈도는 높아지고, 거기에는 다른 사람이 많이 끼여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된다.
미래의 걱정을 현재에 하는 나는 그 미래에 당도하면 그 시점에서 더 나아간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앉아 있을 거다. 생각이나 감정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걱정하고 아쉬워할 거라면 그냥 그 시점에 가서 하면 되는 것을 말이다. 1년 뒤의 미래를 오늘 걱정하고, 1년 뒤에 가서는 또 그 다음 1년 뒤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지금의 나는 자신으로부터 섬세하게 사랑받을 수 없다. 어차피 쓰이는 생각과 감정의 양은 비슷할 거다. 그렇다면 감정의 핀트를 지금, 여기, 현재에 맞추는 것이 맞다. 그래야지만 걱정의 형태보다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고, 효율적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고, 스트레스 관리를 할 수 있다.
단속을 한다고 해서 걱정을 안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수용과 적당한 교정이 필요할 것이지마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걸 잘 되게 만들고, 지금 나의 자존감을 챙기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 방향임이 분명하다.
이성과 감정의 핀트를 지금, 여기에 맞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