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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30. 2022

용의 꼬리 vs. 뱀의 머리

침펄 토론을 보다가 떠오른 생각

분명 토론을 보긴 했는데 침착맨님과 주펄님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기억이  난다. 어미는 보통 '~했어용!' 하고 용으로 끝난다, 그래서 용의 꼬리가 낫다 이런 식이었는데, 평범한 나의 의식이나 상상력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거였기 때문에 요약해서 전달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용의 꼬리가 나은지, 뱀의 머리가 나은지는 인생의 기로에서  해봤던 고민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용과 뱀은 보통 조직이나 집단, 머리와 꼬리는 그 집단 내에서 나의 입지나 위치에 비유된다. 나는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10  10번을 용의 꼬리가 낫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야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용의 꼬리에서 시작하든, 뱀의 머리에서 시작하든, 용의 머리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생각해보면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  무언가를 선택할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용의 머리를 꿈꿀지도 모르겠다. 아무 데나 있어도 되는 사람이면 굳이 시작점을 고민하지 않을 테니). 그래서 동아줄을 잡는 느낌으로 용의 꼬리가  이후에는 무조건 용의 머리를 목표로 잡고 살았다. '그래도 머리와 꼬리는 한통속(?)이니   낫지 않겠어?' 하는 생각이었다.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기에는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따라서 뱀의 머리가 낫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용은 용끼리, 뱀은 뱀끼리 노는  아니라 머리는 머리끼리, 꼬리는 꼬리끼리 어울린다. 용은 용끼리, 뱀은 뱀끼리 노는 놀이터도 있긴 한데, 그보다는 머리는 머리끼리, 꼬리는 꼬리끼리 어울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일개 사원에 불과한 내가 다른 회사의 수장과 동등한 관계에서 이야기할  있을까? 용의 꼬리인 나는 결국 다른 용의 꼬리 또는 뱀의 꼬리와  수밖에 없다. 근래에는 거대 자본과 빛나는 아이디어가 결합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매출과 고용 인원만을 기준으로 대기업을 용이라 하고, 스타트업을 뱀이라 해보자. 요즘은 용도 뱀이 노니는 신선한 세계를 탐낸다. 그럴수록 머리는 머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말하자면  스타트업의 대표와 악수를 하고 기사를 내보내려면 대기업에서는 최소 중역 정도는 되는 사람을 내보낸다는 것이다.


둘째, 용의 꼬리가 용의 머리가 되는 것보다 뱀이 용이 됨으로 말미암아 뱀의 머리가 용의 머리가 되는  빠르고 확실하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는 결코  비교 기준이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목격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꼬리는 , 다리까지는   있어도 머리가 되기는 어렵다. 사실 머리니 꼬리니 하는 것은 입지가 아니라 신분이다. 머리는 머리가 아닌 부위들과 신분이 다르다. 가장 쉬운 예인 회사를 들어본다면, 매출과 고용인원이  대기업 A 있고, 이제  시작해서 그렇다 할 성과를  보고 있는 회사 B 있다. 일단 A , B 뱀이라고 가정한다. 내가 말단 신입사원에서 시작해서 A 회사의 대표직, 의사결정권이 있는 임원 자리에   있을까? 희박한 확률이다. 이미 거대한 시스템이 있는 회사의 꼭대기에 서려면 수십 년을 걸고 배팅을 해야 한다. 만약 일이  풀려서 뒷목에라도 가면 행복할까? 누군가의 사용인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입장이다. 대가리의 발탁을 기다리는 것이다. 머리는 머리다. 머리가 되어야 모든 것을  의지대로 흘러가게   있다. 용의 머리가 되는 것에 욕심이 있어서 용의 꼬리로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뱀의 머리가 되는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그렇다고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되기만 하면 용의 꼬리가 용이 되는 것보다 확실하게 용의 머리가   있다. 누구나 시작은 미약하다. 시행착오도 겪을 수 있다. 끝은 누구도   없다. 그래도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해야 후회가 없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셋째, 내가 용인  알았던 녀석도 알고 보니 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목마름을,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어떤 조직도 용이  수는 없을 것일뿐더러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나은, 내가 속한 회사보다 나은 곳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용이니 뱀이니 하는 것보다는 사실 머리인 것이  중요하므로 머리가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나을  있다.


그런데   가지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생각보다 안목이 없다는 것이다. 뭐가 용인지 뭐가 뱀인지 모른다. 용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알고 보니 뱀일 수도 있다(사실은 용이니, 뱀이니 따질 필요가 없지만 따질 필요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는 '용의 꼬리 vs. 뱀의 머리'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냥 행복하게 살면 된다).


용의 꼬리나 뱀의 머리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의지로 내가 무엇이든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커다란 용으로 승천할 필요도 없다. 귀여운 뱀으로, 카리스마 있는 뱀으로, 유머감각이 뛰어난 뱀으로 유명해질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어서,   나라의 수장이 되지 않더라도, 몇십만의 직원을 거느리지 않더라도 어떤 세계의 최고가   있다. 그래서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나만의 색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가 싶다.  시각 이후로 나는 뱀의 머리를 꿈꿀 거다.  회사를 차리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을 이끄는  아니더라도 내가 노는 물에서 행복한, 코발트블루  뱀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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