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단 뜻
대학생 때 모임을 하는 날, 근황을 묻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내 나름대로 바쁘게 살고 있다고 하면 꼭 이렇게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바빠? 네가 나보다 바빠? 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것도 하고 그러는데?"
내가 바쁘다는 게 같잖아서 그런 건지, 하는 게 많다고 자랑하고 싶은 건지,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친구의 그런 모습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말을 의식적으로라도 하지 않으려 했다. 처음에는 남들에게 구차해 보이지 않으려고 쓰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뭐랄까, 남들에게는 둘째치고 스스로에게 그게 치졸하게 느껴진달까? 바쁘다는 건 현상이고 사실일지라도, '바빠서'라는 이유를 댈 거면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보통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게 되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는 시간이 실제로 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간을 내서라도 해야 할 일이면 시간을 내면 될 일이고, 내가 하는 일들 중에 불필요한 걸 제거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면 그럴 일이고, 그 정도로 우선순위에 있는 일이 아니라면 안 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굳이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로 피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차라리 애정이 없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서 내 결정 하에 안 하는 선택을 하는 게 낫다. 바쁘다는 게 핑계가 될 수 있지만 변명은 될 수 없는 이유다.
사람마다 시간을 보내고 채우는 방식은 다르다. 실제로 시간이 없는 경우도 많지만, 내 하루를 돌아보면 허비되는 시간이 정말 많다. 물론 그 시간을 다 열정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누워서 쉬는 것도, 예능 프로그램을 낄낄대면서 보는 것이 다른 시간을 위한 여백이기도 하다(나는 그 시간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정말 시간이 없는 건지, 내가 능동적으로 가치판단을 한 결과 '그것을 할' 시간이 없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귀찮아서 피하고 있는 건지는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람이든 일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