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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n 03. 2022

나는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받는가

잘 가고 있다

어떤 고민이 생기면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것에 위안을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남이야 어떻게 살든 말든 내가 원하는 상태에 잘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위안을 받는 사람도 있다. 내가 어떤 것으로부터 위로를 받는지 잘 알고, 적절하게 처방을 내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는 만족감을 느끼는 데에 도움을 주고, 후자는 자존감을 느끼는 데에 도움을 준다. 어떤 방식으로 위로를 받든지 아쉬운 점은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구나.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위안을 삼지만, 그렇게 떨쳐버린 고민은 언제든지 다시 내 곁을 맴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남들도 그렇게 살아서 뭐! 나도 그렇게 살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언가 성취를 이루어내기에는 좋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뚱이가 꽤나 피곤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은 존재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고, 찰나의 선택을 한다. 그 모든 선택과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대해 늘 하나의 방식으로 위안받을 수는 없다. 때로는 나의 평범함에, 때로는 나의 비범함에 마음을 다독이고 박수를 치게 된다.


문제는 내가 맞닥뜨린 상황에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해결 방식과 나의 실제 행동이 다를 때 발생한다. 나는 내가 보통의 20대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그 고민을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시 말해 보통의 20대가 하는 고민을 하지 않기 위해 보통의 20대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남들이 어떻게 살든 무슨 상관이람.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건데!'라고 생각하면서 별다른 걸 하지 않고 뭘 해야 할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쭈뼛대고 있을 때였다.


그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난 것은 끝내 다르게 살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남들도 나처럼 걱정을 안고 산다는 것,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위로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남들도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위로는 오래 가질 못했다. 나를 위로해줬던 것은 내가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아니었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도 아니었다. 남과 비교했을 때 어떤지도 아니었다. 그냥 나만의 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모든 것이 일시적인 위로가 되지만, 가장 근본적인 위안을 주는 것은 내가 나만의 길을 간다는 사실이다. 어디론가 가고 있고 그 길의 끝에 오늘보다 나은 내가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잘 가고 있다. 때로는 비가 올 때도 있고 쉬어 갈 때도 있지만, 잘 가고 있다. 그렇게 나를 도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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