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 - 나랑 같이 걸을래

누가 너랑 같이 걷는대? ... 어디로 갈 건데?

by 잘 사는 진리

어린 나와 우리가 떠올라 흐뭇해지는 노래들이 있다. 오늘의 노래도 그렇다.


가을밤이 찾아와
그대를 비추고
또 나를 감싸네

눈을 감을 때마다
향기로운 네 맘이
내게 전해지네

너는 무슨 생각해
나란히 누워서
저 별을 바라볼 때면

나와 같은 마음인지는 몰라도
너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난 소중해

나랑 같이 걸을래
혹시 내일은 뭐 해
네가 부담되지 않는 날에
산책이라도 할래

그냥 날이 좋길래
너와 걷고 싶어져서
내일 많이 바쁘지 않으면 혹시 나랑 같이 걸을래

많이 어색한가 봐
자꾸 딴 델 보고
널 닮은 별만 바라봐

싱그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너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난 소중해

나랑 같이 걸을래
혹시 내일은 뭐 해
네가 부담되지 않는 날에
산책이라도 할래

그냥 날이 좋길래
너와 걷고 싶어져서
내일 많이 바쁘지 않으면 혹시 나랑 같이 걸을래

힘들어 보일 땐
내가 더 아파오고
속상한 마음만 커져

내가 곁에 있을게 항상
너의 편이 되어줄게
저 하늘의 별처럼

나랑 같이 걸을래
혹시 내일은 뭐 해
네가 부담되지 않는 날에
산책이라도 할래

그냥 날이 좋길래
너와 걷고 싶어져서
내일 많이 바쁘지 않으면 혹시 나랑 같이 걸을래


이 노래를 들으면 꼭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나는 기숙사에 살았다. 대학생 때 남자친구랑 데이트를 하면 꼭 거칠 수밖에 없는 장소가 기숙사이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기숙사와 캠퍼스를 종종 걸었는데, 그때가 생각난다. 가을밤은 아니었고, 한참 날이 좋을쯤?


기숙사에서 사범대를 거쳐 인문대로 가는 길목에는 단차가 크지 않은 계단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썸을 탈 때잖아? 남자친구는 적재나 그의 노래처럼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아무튼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걸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귀엽고 웃긴데, 당시에 나는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며 재밌어하던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친구라며 아득바득 우기며 저항했다. 그냥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일 뿐이라고. 그럴 때마다 남자친구는 ‘재밌네-’ 하며 웃기만 했다. 나보다 네 살 많고 연애 경험도 좀 더 많은 사람의 너스레처럼 보였다.


늦은 밤 조명이 크게 제 역할을 못하는 캠퍼스를 걸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의미 없는 농담만 주고받았을 거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머릿속에 온통 남자친구의 존재감만 느껴졌을 때다.


“오늘도 OO가 우리 사귀냐고 했어.”

“그럴 수도 있지.”

“아니, 왜 가만히 있는 거야?”

“그냥. 재밌잖아.”

“... 사귀어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아. 왜, OO 오빠랑 OO 언니도 그렇게 이야기했다잖아. 나중에 결혼 상대 없으면 결혼하기로. 그런 거?“


오... 상여자! 그냥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연애 경험 한 번 없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제법 용기를 낸 것이었단 말이다! 열 오르는 두 뺨을 어둠에 숨기면서!


“난 보험은 싫어.”


대화 내용은 느낌적인 느낌만 남아 각색이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음... 이게 뭐야?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귀게 됐지만, 그날은 더 이상 별 이야기 없이 그냥 걸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그쯤 살짝 덥고도 선선한, 어둡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캠퍼스에서 풋풋한 첫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날이 좋길래 같이 걷자는 가사가 심히 선수(?) 같으면서도 흐뭇해지는데. 침착한 척, 사실은 머릿속은 분홍색으로 꽉꽉 들어차서 정신없이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꽁냥꽁냥 걸을 두 사람이 떠오르는 건, 좋으면서 툴툴대던 그날의 내 마음을 더듬더듬 묘사하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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