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의 슬럼프
나는 나를 매우 사랑하지만, 늘 사랑해온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사랑해도 된다는 것을 관념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렇지는 못했다. 나는 능동적으로 열심히 사는 나, 그 결과 무언가 성취를 해내는 나를 사랑했다. 무기력하게,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나를 미워했다. 스스로를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사실은 무기력한 것도 수동적인 것도 아닐 텐데, 그 마저도 내가 선택한 것이고 의미가 있을 텐데 말이다.
사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는 그 시점에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희망만을 갖고 10년 넘는 세월을 보냈는데, 그 순간의 내 모습이 기대와는 달리 형편없었던 것에 심히 실망했다. 수렁에 빠진다는 것은, 어렵사리 마수에서 벗어나 낑낑대며 몸을 꺼내고 나서야 '내가 수렁에 빠져 있었구나. 왜 그랬지?' 하는 것이다. 수렁에 빠져있는 그 상태에서 나는 그곳을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슬럼프가 시작됐다. 온몸을 바쳐 훈련해온 운동선수의 슬럼프도 아니고 어느 유명 연예인의 슬럼프도 아니고, 평범하게 살아왔을 뿐인 나에게는 어쩌다가 슬럼프가 왔지?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들에서 나는 나에게 원하는 나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희망이 파스스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스스로 잣대를 만들어둔 것이 잘못되었던가 의심했다.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온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힘을 들였는데도 내가 원했던 모습이 되어 있지 않았음에 실망해서 기준을 없애고 살려고 했다.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아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오히려 그 상태가 나를 무기력으로 몰아넣었다.
'왜 열심히 살지 말라고 해?'
'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해?'
'이 부정적인 감정을 나는 도대체 언제 이겨낼 수 있는 건데?'
자유에 대한 갈망을 방치로 풀어냈기 때문인 걸까? 이름과 얼굴을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누군가가 건넨 말에 나는 그렇게 피해의식을 느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가혹한 날들이 이어졌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많았다. 부모님, 남자친구, 친구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모두가 나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줬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사랑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이들이 해주는 위로 역시 나에게 떨어지는 말이므로 말해준 이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기대가 전혀 없었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으므로 나는 나를 늘 후벼 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서 해주는 말마저, 조금 쉬어가라며 건네준 시원한 물 한 잔마저 거절했던 것이다. 별다르게 해온 것도 없지만 자존심이 더럽게 센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 감정에서 어떻게 벗어난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글 치고는 무책임한 말이지만, 나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내가 있는 세상 바깥의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공부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였던 것 같긴 하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훨씬 더 크고 아름다움을 깨달았을 때부터, 내가 외면해온 게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그리고 다시 나에게 내가 원하는 내 모습, 달리 말하면 새로운 희망을 심어줬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 없으면 사랑할 수 있는 나의 표상을 만들고 그리로 가자, 그렇게 늦더라도 안전한 사랑의 영역으로 들어가자고 생각하면서부터였다.
결국에는 내가 사랑할 만한 나를 만들어내고서야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쉽지 않지만 가장 간단한 처방이었다. 다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를 만들어나가자고 생각하는 것, 아직 나는 어른이 못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과거의 내가 희망으로 삼고 살아왔던 순간이, 희망이 컸던 만큼이나 가장 절망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확인한 그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기로 했을 때 나는 기나긴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나는 일시적인 성과가 아닌 지속적인 상태를 갈구했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 상태, 꾸준히 뭔가를 해나가는 상태, 만족하지 않고 도전하는 그 자체를 원했다. 그리고 이것이 완료되는 시점 같은 건 없다는 것도 받아들였다. 늘 어제보다 오늘 더 완전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어제, 오늘은 좀 짧나? 그렇다면 작년보다 올해 더 나은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나는 늘 나를 사랑하진 않지만, 대체로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나를 사랑하도록 붙들어 맬 자신이 있다. 언제든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만들어갈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담담하고도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