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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n 06. 2022

엄마가 늘 말하잖아, 너는 꼭 잘될 거라고

엄마가 심어준 자존감

나는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가 못나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 감정마저도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사랑할 수 없는 나를 밀어붙이고 갈고닦아 스스로를 끝내 사랑할 만한 자아로 만드는 것이 나였다. 나는 언제나 자신감이 있었고,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해낼 수 있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믿음을 심어준 것은 엄마였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엄마는 항상 나에게 말하곤 했다.

"엄마가 늘 말하잖아, 너는 꼭 잘될 거라고."

구체적으로 뭐가 잘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항상 나에게 잘될 거라고 이야기해줬다. 나 자신에 대한 막연한 믿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막연함 때문에 절대적인 것이 되어서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왔다.


엄마는 나에게 무엇 하나 못한다고 지적하는 법이 없었다. 예의에 어긋나는 것을 따끔하게 혼낸 적은 있어도,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고 되고 싶어 할 때 '그게 갑자기 왜 되고 싶은데?' 하고 따져 묻는 법이 없었다. '네가 그게 되겠냐?' 하고 기를 죽인 적은 더더욱 없다. '그래, 해봐라. 우리 진이는 뭐든 잘하니까 그것도 잘할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물론 나는 모범생에다가 자기 검열을 하는 편이라, 뻔한 것만 되고 싶어 했다. 미술 학원을 다닐 때에는 화가,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에는 피아니스트, 이후에는 아나운서, 교수, PD, 뭐 그런 것들. 아, 내가 딱 한 번 무엇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가 엄마는 딸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것보다는 조금 더 잘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긴 했다.


엄마는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는 것에 대해 항상 내가 잘한 것이라고 짚어줬다. 엄마의 덕이 있는 일도 결국엔 내가 잘한 것이라고 해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다른 애만 예뻐하던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부터 나를 잘한다 칭찬해주고 예뻐하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은 엄마가 담임 선생님의 학부모 소집에 적극적으로 응했을 때부터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명랑하고 당당하게 학교 생활을 했던 것은 아빠에게 벌이가 없을 때도 학비와 급식비를 늦지 않게 챙겨주던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다.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내가 타고나길 착하게 태어나서 잘 큰 줄 알았는데, 엄마가 든든한 대지로 버텨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렇게 건강한 정신을 갖고 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지켜준 자존심은, 엄마가 지켜준 덕에 망가져보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상했을 때를 상상할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비롯한 세 남매에게 한 번도 무언가 잘한다는 칭찬을 해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나의 이모에 해당하는 엄마의 언니와 나의 외삼촌에 해당하는 엄마의 남동생은 할아버지께 순종적인 편이었지만 엄마는 참지 않았다고 한다. 매번 다른 집 아이들과 세 남매를 비교하시던 외할아버지와 그렇게나 많이 싸웠다고 했다. 사실 엄마는 화가 많고 예민했다. 외할아버지께 투쟁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아빠의 벌이가 들쑥날쑥한 상황에서 나를 키우는 게 힘에 부쳐서 그런 건지 화가 많았다. 그러나 그 화의 대상이 나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엄마는 화를 내면 나에게 미안하다고 꼭 사과를 했다. 엄마는 엄마가 받았던 상처를 나에게 풀어헤치는 대신 무한한 칭찬과 믿음을 줬다. 잘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모가 되고서 부모의 싫었던 면모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고 하는 걸 보면, 우리 엄마는 나를 위해 자연스러운 것을 거스를 만큼 애를 썼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공부를 제법 하고,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로 인해 엄마의 자아실현이 무너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딸은 엄마의 삶에 스스로를 대입하게 된다. 반대가  수도 있고. 나는 언제나 우리 엄마가 예쁘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께서 졸업한  10년이   지금도 '아름다운 어머니는  계시니~?'라고 물어오시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역시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가 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멋지게 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런  생각을 들을 때마다 그런  없다고,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너를 낳은 일이라고 단정 지었다.


애석하고도 당연하게, 그런 절대적인 정서적 지지가 부담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엄마는 늘 '다른 건 몰라도 네 교육 하나는 무조건 잘 시켜줄게'라고 말했다. 아빠는 나를 잘 교육시키겠다는 엄마의 의지를 묵묵히 지지했다. 엄마는 교육을 목적으로 나를 혼낸 적이 많았지만 아빠는 나에게 모진 말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항상 나를 칭찬해주고 격려해줬다. 엄마, 아빠는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돌아오면 서로 본인의 머리를 닮은 거라고 아웅다웅 다퉜다. 사는 게 힘들어도 어린 딸 하나는 잘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자존심을 내세우고 싸우기도 많이 싸운 엄마, 아빠지만, 어린 나보다 더 감정 표현에 능숙하지 못했던 엄마, 아빠지만, 나에게는 항상 따뜻한 애정이 돌아왔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걱정을 안기고 싶지 않았겠으나, 나는 엄마, 아빠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에 이따금씩 부담을 느꼈다. 엄마, 아빠가 나를 존재만으로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 그렇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그랬다.

더 잘해야지, 더 바른 길을 가야지, 더 좋은 길을 가야지.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나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면서 살고 있는데, 엄마, 아빠가 나 아니면 보람을 느낄 일이 뭐가 있겠어. 더 잘하는 모습 보여줘야지, 보람을 안겨줘야지. 엄마, 아빠가 힘들게 나를 키운 만큼 내가 나중에 엄마, 아빠 좋은 집에 살게 해 줘야지.

그러다 보니 되려 지나치게 신중해질 때도 있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라서 갈팡질팡 할 때도 있었고, 척박한 길을 과감하게 가지 못하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길만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덫에 걸려 깊은 땅굴에 곤두박질칠 때도 있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기대한 만큼을 못해냈을 때 서글픈 눈으로 돌아보게 되는 건, 나 자신과 엄마였다. 그때마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일은 있어도, 엄마가 나에게 실망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순간에 엄마가 마법처럼 외던 '너는 꼭 잘될 거야'라는 주문은 장기 우상향 하는 내 인생의 든든한 지지선이 되어주었고, 나는 결국 온갖 용을 써서 땅굴에서 빠져나오고야 마는 것이었다.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도 컸고, 그런 만큼 나의 나 자신에 대한 기대도 컸기에 나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존재가 되지는 못했다. '아직까지' 되지 못했다고 표현한 것은 다행히도 나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 역시 엄마가 심어준 자존감,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엄마가 심어준 자존감 위에 나 역시 소기의 성과를, 스스로에 대한 증명을 통해 자존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자식 농사를 워낙 꼼꼼하게 온 힘을 다해 지어서 아마 쉬이 부러지지 않고 결코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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