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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l 08. 2022

너한테는 하나도 샘이 나지 않아

내가 진짜 잘 살고 있나 보다 느낄 때

언제 만난 친구인가에 따라 친구들의 성격이 확연히 구분된다.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은 가만 보다 보면, 내가 얘네를 대학교를 다니거나 그 후에 만났으면 친해질 수 있었을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 다양성과 의외성 덕분에 그들과 노는 게 재미나기도 하고 낯선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반면 대학교 때 만난 친구들은 나와 정말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선비 기질이 있다거나, 스스로에 대해 약간의 강박을 갖고 있는 것, 주어진 길 위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에서 오는 다양한 성품과 기질들이 닮았다.


그중에 한 명은 1년 선배로 만난, 사실 빠른년생이어서 나와 생일이 4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언니다. 30살의 문턱에서 나랑 동갑이 되고 싶어 했지만, 한 번 언니를 어떻게 동갑으로 대할 수 있겠어! 하지만 언니는 언니미가 뿜뿜하는, 좋은 친구다. 언니는 늘 따듯하고 진솔하다. 언니는 몸이 상당히 마른 편인데, 보조개가 이쁘게 들어가고 눈빛이 부드럽게 빛난다. 그래서 가녀린 그 몸이, 튼튼한 나의 몸보다 더 단단하게 느껴지곤 한다. 진심 어린 눈빛을 받으며 진지하게 건네는 말들을 듣고 있자면, 내가 이렇게 좋은 친구를 뒀다니 잘 살아왔구나 싶다. 언니와 나는 학부생 연구 프로젝트도 함께 했고 학사 졸업 논문을 같이 썼다. 학교 생활, 인간관계, 연애상담까지, 서로에게 안 한 이야기 빼고는 다 한 사이이다. 언니는 프로젝트의 리더였는데, 언니가 리더가 아닌 상태를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리더의 역할을 잘해줬다. 모든 걸 꼼꼼히 챙기는 언니에게 그 자리는 상당한 스트레스였겠지만 팀원인 나는 그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적할 것은 지적하고, 속상한 것은 속상하다고 말했던 언니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조심스럽고 정중했지만 거침없었다. 본받을 모습을 보여준 것은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늘 생각하게 돼."

내 인생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칭찬 한 마디였다. 나는 힘이 들 때 항상 언니가 해준 그 말을 상기하곤 했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좋은 사람인 언니가 그렇게 이야기했잖아. 내가 겪는 문제의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어'. 사실 동생에게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한다는 게 꽤 충격적이기도 했다. 사람이 얼마나 진솔하고 꾸밈없는 사람인가 싶어서.


언니와 나는 2020년 10월, 내가 부산에 살고 있을 때, 언니가 출장을 왔을 때 약속했다. 1년 후에 언니는 좋은 취미를 갖기로, 나는 글을 많이 많이 쓰기로.

"신기해. 너는 정말 그 약속을 지켰네?"

언니는 늘 대화를 하는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한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내가 하는 것들을 물어왔고, 가끔은 뜨끔할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서, 나의 동인이 뭔지 궁금해서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만났을 때는 내가 책을 낸 이야기, 온라인 강의 플랫폼 대표님과 미팅을 하고 온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언니가 말했다.

" 진짜 대단한  같아. 근데 나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를 하면서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편인데, 이상하게 너한테는 샘이 하나도  난다?  너를 진짜 좋아하나 !"

하고는 해사하게 웃는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도 샘을 내는  아닐 거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거겠지.  역시 언니에게만큼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나의 모든 모습을 털어놓을  있기 때문에 언니의 말이 공감이 되기도 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언니는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말재주가 있다.

"나 네가 확실히 방향을 틀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까지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간 건 아니지만, 10년 후의 너는 다른 곳으로 가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언니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니 꼭 그렇게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요즘 우울하고 힘이 빠진다기에 글을 써보는 건 어떠냐고 말했다.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강요한다고 느낄까 봐 걱정이 되어서 단서 조항을 자꾸 붙이게 되었다. 말하다 보니 하고 싶은 말보다 단서 조항이 더 길었다.

"내가 아직 뭐 대단히 성공한 것도 아니고, 언니가 관심 없는 이야기인데 억지로 듣고 있을까 봐 걱정은 되지만, 언니 글을 써보면 어때?"

그랬더니 언니가 말했다.

"너 왜 자꾸 네가 한 게 대단하지 않다고 해! 대단해! 물론 이렇게 말하고는 있어도 그런 겸손한 모습 때문에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지만 말이야."

언니는 나더러 내가 언니에게 귀인이라며 오늘 헤어지고 집에 가면 운동을 하고 일기도 쓸 거라고 했다.


언니는 알지 모르겠다. 언니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더 멋진 내가 되고 싶어지는 원동력 이 된다는 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남들에게 '나 이런 좋은 친구 있어요!' 자랑하고 싶을 만큼 본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선한 언니가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예의 그 보조개를 보여주며 함께 저녁을 먹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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