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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Sep 02. 2022

물욕 쩌는 사람이 절약하는 법

안 쓰는 건 못함ㅋ


나는 씀씀이가 결코 작은 편은 아니다. 물욕도 있고, 식욕은 더하다. 먹고 사고 하다보면 바닥 나있는 것이 돈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미래의 나 역시 돈을 잘 쓰면서 살길 바라기 때문에 현재의 나를 어느 정도 단속할 유인이 있었다. 꽤 오랜 기간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요즘엔 돈을 낭비하지도, 돈에 휘둘리지도 않고 적당히 쓰고 적당히 졸라맬 줄 알게 되었다. 돈을 쓰고 후회하거나 원하는 것을 사지 못해서 미련을 남기지도 않는다. 세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돈을 왕창 써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무적인 목표를 세운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하루의 보람을 소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 것이었다.


섣불리 시도하기 어려운 방법일 수도 있지만 돈을 왕창 써보면 돈을 어떻게 썼을 때 기분이 좋은지, 어떻게 썼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은지를 판별할 수 있게 된다. 한때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겠다며 세 달치 월급을 모두 써버린 적이 있는데, 그때 그렇게 해본 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었다.


쇼핑은 평범한 사람이 먹는 것 이외에 돈을 많이 쓰곤 하는 곳이다. 과거의 나는 모범생 병이 있었기 때문에 치장에 돈을 많이 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사주는 옷을 대충 입고 다녔다. 엄마는 한창 예뻐야 할 때 꼴이 이게 뭐냐며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옷을 사줬다. 단정하고 소재도 좋은 옷이었다. 당연히 내가 지하상가에서 사는 옷들보다 훨씬 비쌌다. 그렇지만 내가 원해서 산 건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는 엄마가 상당히 억울해하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딱히 원하는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는 옷을 더 안 사게 되었고,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살라 치면 죄책감까지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도 모르겠고, 쇼핑에 돈을 써도 쓴 보람이 없어 그다음에는 더 큰 죄책감이 들었다. '어차피 사놓고 못 입겠지... 사지 말자.. 근데 사고 싶은데... 근데 잘 못 입을 것 같아' 하면서. 그렇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쇼핑에 자잘한 지출이 많은 이상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삘이 꽂혀서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내가 찾고 내가 사겠어!' 하며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운동화와 엄마가 사준 로퍼 한 켤레, 구두 한 켤레가 다인 신발장에 부츠도 채우고 샌들도 채웠다. 무채색의 비즈니스 캐주얼만 가득한 옷장에 화사한 색의 옷들도 채웠다. 이전에 나는 내 손으로 3만 원 넘는 옷을 사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쇼핑 앱을 통해서 5만 원이 넘는 옷도 사봤다. 일부러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못해도 2백만 원은 넘게 썼다. 한참을 쓰고는 저절로 멈추게 되었다. 내 스타일도 찾았겠다, 옷을 딱히 더 사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은 옷도 충분히 갖췄기 때문에 딱히 더 갖고 싶은 옷이 없었다. 그러면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서는 하나하나에 어떤 느낌이 들면 결제로 넘어가면 되는지 알게 됐고, 사고도 마음이 찝찝하면 샀던 걸 무르면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별 일 아니었던 것이다. 찔끔찔끔 살 때는 불같이 차오르던 물욕이, 아예 끝장을 보고선 아무 일 없었던 듯 평화를 찾았다.


재무적인 목표가 생긴 것도 큰 몫을 했다. 수중에 800만 원밖에 없던 상황에서 빚을 조금 끌어다가 6천만 원대의 집을 산 후에는 대출을 갚으면서 자동으로 저축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좋은 집을 사야지, 나중에는 좋은 집에 살아야지' 생각하다 보니 집 미만 잡(?) 느낌으로 다른 것들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전에는 100만 원 쓰는 것쯤이야 우스웠지만 1000만 원이면 지방에 1억 미만의 아파트 월세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의 10%에 준하는 100만 원도 이전보다 더 큰돈으로 느껴졌다. 이 정도면 부동산 중개 수수료인데? 법무 비용까지 충당 가능한데? 하면서 100만 원 단위의 돈도 무언가 행동할 수 있는 돈으로 개념이 바뀐 것이었다. 이 돈을 더 멋진 곳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존에 마음이 가던 것에도 마음이 덜 갔다(양심상 안 간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내 집 마련을 위한 공부, 나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기 위한 자기 계발, 글쓰기 등에 몰입하니 그로부터 느끼는 보람이 소비에서 받는 위안보다 컸다. 집중하는 곳을 바꾸는 것이다. 원래는 퇴근하고 집에 가서 침대에 꿈지럭 대며 누워 있다가 배달 음식을 본식과 후식, 반주까지 알차게 챙겨 먹고 또 드러누워 유튜브를 보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이루고 싶은 여러 가지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느릿하게라도 달려 나가다 보니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원체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살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어느샌가 그렇게 되어 있었다. 글을 써내는 보람, 그것이 책으로 나오는 기쁨,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성취 등,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 가끔씩은 콧노래도 나오는 기쁜 일이 생겼다. 미래의 내가 부디 행복하길 바라며 차곡차곡 무언가를 해나가다 보니 어느샌가 현재의 나도 행복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돈 쓰는 재미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돈을 아끼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다면 마냥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졸라매는 것보다 잠시 기간을 정해두고 돈을 팡팡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는 재무적인 목표를 확실하게 세우거나 다른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돈보다 매력적인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는 동화가 주는 교훈이 뭔지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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