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싫어요
번아웃과 무기력 둘 중에 뭐가 낫냐고 물어본다면, 둘 다 싫다. 근데 둘 다 싫은 건 답변으로 쳐주지 않으니,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을 두고 밸런스 게임을 한다면 나는 차라리 번아웃이 좋다(?). 물론 이 대답은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나는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성장을 위한 그 어떤 활동도 하지 않을 때 무기력했다. 크게 만족할 것도, 크게 불만족할 것도 없는 일상 속에서 나는 가라앉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힘껏 하고 번아웃이 찾아왔을 때는, 비록 번아웃 기간만큼의 공백이 생기긴 했어도 보람차고 행복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증거 같은 거기도 하니까.
경험상 무기력은 더한 무기력을 낳는다. '내가 그렇지, 뭐'로 시작된 부정적인 감정은 그 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어렵다. 뭐가 되었든 나쁜 순환의 고리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무기력했던 때에 그 시간을 이겨내게 한 것은 결국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 원망, 상황에 대한 부정 등 다양한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내가 나를 이렇게 힘 없이 둬선 안 되지, 그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하는 최소한의 애정이 있었다. 인생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기 시작했고, 힘이 생겼다.
내가 느끼는 번아웃의 문제점은 극복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번아웃은 스스로가 소모되어 끝내 타버릴 때까지 본인을 혹사시켰다는 뜻이다.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릴 뿐,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신경 쓰는 것 말고는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나의 회복력을 믿고 망각을 믿을 수밖에.
굳이 따지자면 번아웃이 낫다고는 했지만, 온다고 하면 막을 방도는 없어 환영해줘야겠지만, 가능하면 안 오는 게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사는 와중에도 마음에 여유를 둔다.
번아웃을 대비해 마음에 여유를 둔다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마음의 여유를 두라고 마음에게 지시를 내린다. '너 지금 여유 없음.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임? 뭐가 되었든 건강을 해쳐가며 할 일은 아님. 천천히 하셈'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마음을 챙기라고 신호를 보낸다. 둘째, 부지런히 사는 것 말고는 모든 조건을 느슨하게 한다. 그게 먹는 것이든 돈을 쓰는 것이든 건강 말고는 신경 써야 할 항목을 줄인다. 셋째, 마음의 여유라는 것은 시간적 여유에 대입할 수도 있으므로 1년 걸릴 일이라면 1년 2개월 만에 하자고 생각한다. 오래 걸리는 만큼 더 단단하고 뭉근하게 채울 수 있겠지.
나중에 내 열기가 식은 어느 순간에는 차라리 무기력이 나은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그때의 나에게 맡기기로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너무 미래는 그만 생각하고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으니.
근데 둘 다 싫어. 오지 마. 근데 오면 어쩔 수 없지. 극복할 수 있다. 그래도 오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