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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Oct 26. 2022

브런치부터 유튜브까지 멱살 잡혀 왔다

감사한 사람들

나는 우리 팀장님 덕분에 글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내 글을 책으로 내자고 말씀해주신 출판사 대리님께 보답을 하고 싶어 유튜브를 시작했고, 나와의 인터뷰를 업로드해주신 유튜버 분과 온라인 강의를 제안해주신 PD님 덕분에 얼굴을 드러내고 유튜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만 유튜버 분의 조언으로 내가 서울대학교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내가 1만큼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가 급발진하여 10만큼을 하게 된 것은 다 남들 덕분이다.


조금 다르게 재밌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 몇 편이 가져온 나비효과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주변에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취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먼저 팀장님께 들통났다. 다음 메인에서 내 글을 보셨다고 했다. 팀장님은 나의 팽창하는 열정을 아셔서 그런지 계속 글을 쓰라고 응원해주셨다. 내 글을 앞으로 보지 않을테니 재밌게 하라는 배려도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의기소침해지는 일 없이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이지만, 본격적으로 열심히 산 것은 1년 정도 된 일이다. 내 글을 책으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신이 났던 게 그 계기였다. 나 같은 주니어가 회사를 다니면서 자아실현의 꿈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만의 다른 성을 쌓고 싶다며 글을 쓴 지 1년도 안 되어 성큼 찾아온 기회였다. 당연히 기획을 해주신 편집부 대리님께 감사한 마음이었다. 대리님이 회사에서 '뭐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저자를 데려와서 성과가 이 모양이야?!'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으셨으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고 싶었다. 물론 책을 파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볼 수 있으니까 인스타든 블로그든 유튜브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연락을 취해서 나갈 수 있는 채널에 나갔다. 급기야 유튜브 채널을 직접 열었다. <내가 내 집에 살고 싶을 뿐이야>라는 책의 내용을 조금씩 요약하거나 진전이 생긴 일을 영상으로 찍어 업로드했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물론 퍼스널 브랜딩의 꿈도 키우면서.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은 상태였다.


다른 유튜브 채널에 나가면서 반 강제로 얼굴을 드러내게 됐다. 물론 다른 채널에서는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지만, 요즘은 일반인 저자가 많고, 그분들도 다 얼굴을 드러내고 출연을 하셨기 때문에 나라고 빼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다 보니 내 채널에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게 왠지 이상했다.


와중에 온라인 강의 제안을 받아서 촬영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얼굴을 드러낸 채로 녹화를 했다. 내 채널에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데, 다른 오만 곳에서는 얼굴을 다 드러낸 채로 이야기하는 게 더 우스워졌다. 그러다가 한 유튜브 채널에는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놓고 출연하게 되었다. 내 채널에서는 입부터 상체만 드러내는데, 다른 사람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눈만 드러내? 게다가 그 채널의 구독자 분들이 내 채널을 방문해주시기도 하면서 고민이 됐다. 그래서 그 영상이 업로드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감사한 분들께 믿음직스러운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신뢰가 가려면 아무래도 얼굴을 드러내는 게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얼굴을 드러내고 소개 영상을 급히 찍어 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또 얼굴을 드러내 놓는 게 별일 아닌 셈 되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나는 책을 판매하는 데에 어떻게든 기여를 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어 출연 신청을 받는 30만 유튜브 채널에 출연 신청을 했다. 사전 인터뷰를 하다가 출신 대학교를 물어보시기에 뜸을 들이다가 결국 출신 대학교를 밝혔다. 원래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유튜버께서 내가 영상을 보는 분들께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직장을 다니면서 작은 집을 샀느니, 책을 썼느니 하는 게 아니라 '서울대만 졸업하면 탄탄대로를 살 줄 알았지만 답이 없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라는 메시지라며, 내 채널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며 설득을 하셨다.


설득을 당했다. 잘 이끌어내 주시겠다고 이야기하셔서 믿기로 했다. 휘몰아치듯 촬영을 했고, 며칠간 현타가 왔다. 나는 좀처럼 입맛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한 3일 동안 입맛이 없었다. 열심히 사는 또래들의 동료 정도의 포지션을 잡고 싶었는데, 거기에 내 대학교 이야기가 보탬이 되는 게 맞을까, 괜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보다 윗길에 있는 유명 유튜버의 말이 성과와 브랜딩 측면에서 무조건 옳을 것이라 생각했고, 조언을 얻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지만 그냥 내가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이제는 내 채널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할 타이밍이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편한 대로 하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그 기회를 왜 놓치냐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팩트를 나열해보기로 했다. 내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 30만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에 나갈 기회는 쉬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지금 내 채널에는 나만의 색깔이 묻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부동산 유튜버, 자기 계발 유튜버가 많았으니까. 나도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은 때였다. 내 채널을 보는 사람들이 내 채널은 색깔이 없다고 조언을 해주곤 했으니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영상을 찍는 동안 NG도 많이 나고 머릿속에 '이게 진짜 맞나?'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라서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촬영을 했고,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편집을 했고, 업로드를 했다.


글쓰기로부터 시작된 지금까지의 과정 속에서 깨달은 게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자신을 못 믿겠으면 남을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책을 내본 것도 처음이고 유튜브도 아직 낯설지만, 내가 출판까지 무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출판사의 대리님이 이끌어주신 덕분이었고, 유튜브 채널에서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도 다른 유튜버 분들의 조언 덕분이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할 수도 있지만 옳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실행할 용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어찌됐든 용기를 낸 게 다행이다 싶을 뿐. 내가 방법도 모른 채로 그저 내 뜻대로 밀고 나가면서 표류하고 있었다면 이렇다 할 성과도, 그렇다 할 가능성도 보지 못한 채로 '에잇! 안 되는 거였네!'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둘째, 뭐든 용기를 내고서는 별일이 아니었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출신 대학교를 밝히는 것도 지나고 보니 '나도 참 유별나다, 그게 그렇게 신경 쓰였다는 것 자체가 아직 지키고 싶은 게 많다는 뜻이네' 싶었다. 시도를 해본 후 한 차례 지나고 나면 한 걸음 나아간 상태가 디폴트 값이 되었다. 그때 비로소 성장한 느낌, 나를 둘러싼 답답한 벽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도 겨우겨우 한 꺼풀씩 까는 정도겠지만 작은 것들이 모여 무언가 그럴듯한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 걱정만 해서는 달라질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게 되었으니 조금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미 잘할 수 있다고, 잘될 거라고 생각했던 막연한 믿음이 무너진 적이 있다. 지금 당장은 내 무던한 일상을 다채롭게 보내고 있는 게 신이 나서 이것저것 하고 있고, 그것들이 마냥 좋아 보이지만, 더 나중에는 오늘의 이야기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확신이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먼 미래의 내가 오늘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거 하나 믿고, 또다시 열심히 살아봐야지.


역시 오늘도 별 수 없다는 결론이구나. 앞으로의 갓생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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