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먹는 삶
나는 학업 성적과 인생의 탄탄대로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탄탄대로는 탄탄하고 넓은 길이다.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직진할 수 있는 편한 길. 그 관점에서 보면 나는 지금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좋다는 대학을 나와 괜찮은 직장에 취업을 했으니.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느끼는 건 왜일지.
내가 생각했던 탄탄대로란 무엇이었는지, 그간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내 삶을 탄탄대로라고 평가하지 않았는지, 고쳐서 다시 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첫째로 원했던 탄탄대로의 조건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릴 적 나는 미래의 나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꼭 하고 싶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 찾고 나서도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꾸준한 노력은 인생을 깊이 있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도전은 삶을 다채롭게,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널따랗고 묵직한 삶의 부피를 갖게 된다.
두 번째 조건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주고 사랑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나와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고 싶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타인이 나를 어느 선 이상까지 좋아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바뀌었다.
얼마 전 드로우앤드류님과 이대양 작가님의 강연에 갔다가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회수율이 100%다'라는 이대양 작가님의 말씀이었다.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 말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할 때도, 지독히도 매정하게 대할 때도 있었지만, 내 성격을 바꾸려고 할 때보다 내가 내 성격에 져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만히 쉬질 못하고 ‘어디 재밌는 거 없나’ 하고 미어캣 마냥 고개를 휘저으며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닐 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런가? 내가 너무 욕심이 많나’ 생각했지만 그냥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했다. 타인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가장 1순위는 나다. 나는 나의 마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셋째로 원했던 탄탄대로의 조건은 내가 힘을 들이면 그만큼 성과가 나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괜찮은 성과로 곧이곧대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살아보니, 특히 남의 돈을 받고 일을 해보니 이것도 쉽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들인 노력과 성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모두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무언가 해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성공해버린 기억이 남아 앞으로의 삶을 견인해주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 만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미래를 더 멋지게 가꾸고 싶은 그 욕심 역시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받아들여줘야 한다. 내가 고생해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데 굳이 지금에 만족하라고 주저앉힐 필요도 없다.
넷째로 꿈꿨던 탄탄대로의 조건은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회가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삶이었다. 딱히 자기 계발을 한다거나 별다른 스킬을 갈고닦지 않아도 여러 재미난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는 삶을 기대했다. 거만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인생이 100세까지이고, 대학생활까지를 25년이라고 한다면 나는 25년 동안 배운 것으로 나머지 75년을 우려먹으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문제가 있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요행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 꾸준한 노력과 새로운 도전으로 기회를 찾아 내 것으로 만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바뀐다. 생존을 위해 새롭게 익혀야 할 것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진짜 멋진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시간, 그 누구도 목격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 조건, 나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을 원했다. 앞으로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멋진 사람은 사려 깊고 현명하고 당당한, 돈도 좀 있는, 그런데 그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줄 아는, 하여튼 그 모든 좋은 것들을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바뀐 게 딱히 없다.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하여 자유롭게 살고 싶다.
이쯤 되니 어린 내가 원했던 것은 날로 먹으면서도 사랑받는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사실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내가 탄탄대로를 원했던 게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생각했던 탄탄대로는 온순한 길이었다. 매끄럽고 따사로운데 재미는 없는 그런 길. 그리고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나는 이제 와서 탄탄대로를 벗어나 왠지 소심한 모험을 떠나보고 싶달까. 사서 고생일지라도 안주하지 않고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달까.
탄탄대로는 본래 평탄하고 널찍한 길을 의미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길을 기꺼이 가고 싶다면 굴곡지거나 좁고 거칠더라도 그 길이 가장 확실한 나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교통체증 하나 없는 매끈한 길을 걸으면서도 꽉 막힌 듯 답답함을 느낀다면 그건 제 아무리 탄탄대로라도 어쩔 수 없다. 용기를 내든 수를 쓰든 그 답답함을 탈피해야 한다. 그게 내가 앞으로 해나가려는 것들이고, 그 길이 나의 탄탄대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