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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Feb 23. 2021

회사 때문에 이사 가고, 회사 덕분에 이사 갑니다

남의 집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


전세가 싫어요
 

 전세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이 많습니다. 소문만 무성한 게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임대인이 임차인의 큰돈을 무이자로 쥐고 있는 상태가 되므로, 임대인이 마음만 먹으면 떼먹기 쉬운 구조인 것 같습니다. 또는 돈이 마련이 안 될 경우에 상환이 지연되면서 임차인 속이 타들어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온전한 나의 돈보다는 전세자금 대출을 활용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건 기존의 전세와 유사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월세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부모님은 어머니께서 딱 제 나이쯤일 때 전세금을 떼일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돈을 받아 이사 갈 사람에게 욕을 들어먹으면서 비용을 부담해주고 임대인과 그의 아들을 찾아다녀 전세금을 겨우 돌려받았다고 합니다. 저와 친한 회사 선임님도 전세금 반환 때문에 경매 현장에 방문하고, 임대인의 회사에 찾아가 자물쇠가 묶여있는 모습, 온갖 고지서와 통지서가 쌓여있는 모습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임차인이 어리석어서도 잘못을 해서도 아닙니다. 작정한 사람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당하게 되지요. 또는 착한 임대인이라도 여건이 안 되면 못 돌려주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전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제도가 생겼지만, 간악한 인간 앞에서는 임차인도, 법도 속수무책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어머니는 제가 온전히 저의 돈으로 전세를 얻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어요. 저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세보다는 월세를 구하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지출이 더 발생하지만 신경은 덜 쓰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전세를 얻은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전세 사기를 당하지는 않았어요. 좋은 주인을 만났고, 전세금을 보호하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모든 제도를 끌어다 썼습니다. 물론 이 또한 좋은 주인이 좋은 생각으로 그 모든 것을 허락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회사 때문에 이사 갑니다
: 부산 지방 근무 발령



 입사 3개월 후 12월 말, 다음 해에는 부산에서 지방근무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어머니께 알렸고, 주말에 가서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부산 A 오피스텔에 가계약금 100만 원 걸었어."
 어머니는 성격이 불도저 같습니다. 생각난 것은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하고, 어마어마하게 찾아보고 확실하고 빠르게 추진하시지요. 저는 지방근무 소식을 들으며 겉은 태연하고 속은 거취에 대한 고민으로 복잡한 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는 온갖 부동산 관련 매체를 이용하여 매물을 알아봤고, 부산 벼룩시장에서 깨끗해 보이는 오피스텔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는 대출이 없는 집이고, 남향이라고, 그래서 이런 매물은 나오자마자 나간다는 말까지 접수한 다음 부산에 직접 가보지도 않고 가계약금을 터억 걸고 저에게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매우 짜증이 났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내 3-4년 정도의 생활을 결정짓는 집을, 나는 직접 보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엄마도 직접 보지 않고 사라질지도 모르는 가계약금을 걸었다니!
 "아니!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가계약금을 터억 걸 수가 있어!"
 "사진 보니까 깔끔하고 괜찮았어. 집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대출 없고 남향이래. 그럼 웬만하면 살 만할 거야."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아우 정말! 가보고 진짜 별로면 가계약금 포기하면 되지!"
 "아니, 그니까 그걸 왜 포기하냐고! 주말에 가보고 하면 되지!"
 "우리가 가면 집이 바로 나오는 줄 아냐? 있을 때 해야지! 이런 데는 빨리 나간다고!"
모녀가 싸우는 반복되는 자연스러운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겠습니다.
 

싸운 게 무색하게도 집은 아무 문제없이 아주 좋아서 바로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남향이기도 했고, 화이트톤 인테리어로 깔끔하고 공간활용이 좋은 방이었습니다. 전용면적 8평, 공급면적 17평 정도로 좁지 않고 혼자 살기에 딱 적당한 편이었고요. 5분만 걸어나가면 해운대 바다가 펼쳐져 있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역시 딸이 엄마를 지혜로 이기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회사 덕분에 이사합니다
: 회사 최고의 복지, 주거 융자 지원



 회사원이라는 신분이 금전적으로 가장 보탬이 되는 것은 월급도, 퇴직연금도 아닙니다. 소득의 주기가 고정적이기 때문에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가장 좋은 보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출은 은행에 대출을 직접 요청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몸담은 회사는 주거 융자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좋은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전세자금 대출처럼 회사나 은행이 집주인과 거래하는 형태는 아니고요. 주택의 매매, 임대차 계약을 목적으로 본 대출을 신청한다는 것을 회사와 은행에 증명한 후 제 이름과 신용, 일부 보증보험으로 돈을 빌려 통장으로 받아서 직접 집주인과 거래를 하는 구조라, 전세금에 대한 장치는 본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부산의 전세금은 9,000만 원이었고, 저는 회사 대출의 최대치인 8,000만 원을 빌렸습니다. 이 대출금의 장점은 제가 전세를 빼고 나서는 그 돈을 다음 전세나 월세 보증금, 또는 다른 목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대출을 받은 다음 해에 대출 한도가 8000만 원에서 거의 2배 가까이 올랐고, 기신청자에 대해 소급 적용은 불가능하여 아쉽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이자를 상당 부분 대신 내준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대출입니다. 대출 원금과 이자 일부는 2년 거치, 10년 상환으로 급여에서 공제됩니다. 12년은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군요. 하하.

 


 단독 세대주 신청



 저는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기숙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주민등록상 주소를 옮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세 계약을 하면서 본가에서 처음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단독 세대주 신청을 했습니다. 이사를 갈 집이 위치한 동 주민센터나 민원 24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는데, 저는 민원 24를 통해 신청했습니다. 이때 단독세대주로 나간 것이 '만 25세 생애 첫 주택 구입 이야기'의 '미혼의 만 25세는 단독세대주가 될 수 있을까?'의 이야기로 이어지지요.


 이제 제가 10년 동안 상환할 8000만 원이라는 돈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장치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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