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매매에 대한 어머니의 조기 교육
부모님이 상속해주려고 너희 몰래 갖고 계신 집이 있을 거야
어머니가 이렇게 행동하신다고 해서 자녀들이 그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중학생일 때부터 어머니는 집이 왜 필요한지, 어떤 생각과 계산으로 집을 구매하게 된 건지, 우리 집의 재산은 어떻게 구성되어있고 굴러가고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사실대로, 숫자를 보여주면서 알려주셨거든요. 17살 때는 집안의 재산 상태를 모두 파악한 상태였어요.
"부모님이 상속해주려고 너희 몰래 갖고 계신 집이 분명 있을 거야."
회사에서 서울에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주니어들의 걱정을 들으면서 한 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집을 갖고 있는지 여부에 의구심이 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전제에 의구심이 들었어요. '엥? 부모가 갖고 있는 집이 있는데 자식이 모를 수가 있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실제로 성인이 되고 나서도 본인의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드라마에서도 보면 주인공 커플이 결혼을 할 때, 따뜻한 사운드트랙이 깔리면서 "행복하게 잘 살 거라. 우리는 그거면 됐다."하고 주인공도 존재를 알지 못했던 통장과 도장을 내주잖아요. 그런 부모님은 속칭 세속적인 것들을 조금이라도 늦게 알았으면 하는 마음, 내 자식의 미래는 내가 책임지고 싶은 마음을 가지신 게 아닐까 해요.
엄마의 조기 교육
그와는 달리 저는 조기교육을 알차게 받았어요. 저는 역시 엄마 딸이라 그런지, 어머니께서 우리 집 재산을 알고 있도록 해주신 게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그래서 경제생활의 시작이 좀 더 편했던 것 같거든요. 입사를 해서 돈을 모아서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해보고 목표를 정해둘 수 있었어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축을 하고, 가치 있는 경험에 소비를 했어요. 경제 관련 공부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떤 배움이든 나의 이야기, 우리 집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지요. 경제 공부는 안 할 수 없지만, 무작정 시작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내 일이 아니라고 방심하면 나중에는 시작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이제부터 알아가는 게 늦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는 마음을 대단히 단단히 먹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공부'가 되어버리기 쉬운 것 같아요. 물론, 어머니께서 주야장천 이야기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거시 경제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몰라요. 부동산도 마찬가지로 지식보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편에 가깝지요. 내 집이 필요하구나, 그걸 위해서 내가 뭔가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만큼은 확실하게 갖고 있고, 거기에 관해서는 영상이나 책도 찾아보곤 합니다.
엄마가 왜 그랬을까
어머니께서 당신의 딸에게 이렇게 열심히 이야기해주셨던 것은 저를 잘 키우겠다는 책임감 때문이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부모님, 그러니까 저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늘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대요. 결혼을 하고서 부부간에 비자금을 만들어두거나 재무상태를 속여서는 안 된다고요. 그 시절은 또 그런 세상이기도 했겠지요. 저를 키우면서, 세상 일이 마음같이 돌아가지 않으면서 어머니는 20대 때 그런 말들을 믿고 따랐던 게 후회되셨대요. '돈이 왜 안 중요하냐! 돈이 중요하다고 누군가가 나를 조금만 일깨워줬더라면 내 딸을 키우는 일이 덜 어렵고 미래를 맞이하는 일이 덜 힘들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드셨다고요. 그리고 '내 딸에게는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줘야지.' 생각하셨어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경제에 관한 책을 섭렵하기 시작하셨지요.
제게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는 어머니의 모습 중 하나가 책을 읽는 모습이거든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같은 책들 있죠? 저는 커서 경제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이 그 책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어? 그거 우리 엄마가 읽던 건데?'하고 신기해했어요. 어머니의 책꽂이에는 경제 공부, 부동산 공부의 바이블로 꼽히는 책들이 늘 가득했어요. 그 당시에는 활자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채널이었기 때문에 책을 통해 자본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시 말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으셨어요. 그러고는 배운 것을 바로 실천으로 옮기셨고요. 당시에 이용 가능한 대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셔서 주택 매매에도 도전하신 거고요. 가족들은 어머니를 뜯어말렸어요. '여자가 간만 커가지고는, 겁도 없이 집을 사려고 한다'라는 말을 들으셨대요. 이 역시 그때가 그런 세상이었던 것도 있겠지요. 그래도 어머니는 굴하지 않으셨어요. 이건 인성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기만 좀 두드려보면 나오는 건데 뭘 그렇게 겁내냐고, 과장 좀 보태어 투쟁을 하셨죠. 그렇게 어머니는 저를 키워내셨고, 십 수 년도 전에 집값이 오르기 전 갖고 있던 집들을 팔고 손주가 초등학생이 될 나이가 될 때쯤까지 월세를 살고 계시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편히 사실 수 있는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하게 해 드렸고요, 저축만 알고 살던 가족들이 부동산으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게 해 드렸어요. 존경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지방 중소도시가 아니라 작은 광역시에서라도 시작했으면 부동산계의 거물이 되시지 않았을까요?
엄마의 공부는 끝이 없다
이렇게 경제에 밝고, 추진력이 상당하시고, 새로운 배움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어머니는 최근에는 주식공부도 시작하셨어요. 어머니랑 저랑 매일 싸워요. 주식 이거 사라, 저거 사라, 이거 팔아라, 왜 안 팔았냐! 하시거든요. 제가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해서 고분고분 모든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닌지라 '아우! 전화 좀 그만해! 그리고 좋으면 엄마가 사면되지!' 하지요. 그러다가도 오늘 어떤 종목이 괜찮았고, 수급은 어땠고, 재무 상태가 어떻고, 뭘 샀고, 뭘 팔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 격려하는 게 우리 모녀의 모습이에요.
지금 우리의 결단과 행동이 자산 증식의 측면에서 최고의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수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께 정말 감사해요. 어머니께서 온 힘을 다해 저를 키워내시는 동안 저는 오히려 더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거든요. 지금 당장 제가 가진 것은 '만 25세 생애 첫 주택 구입 이야기'에서 소개해드린 18평짜리 작은 아파트 하나, 앞으로 소개해드릴 거주 목적으로 전세를 끼고 구매한 아파트 하나와 빚인 것이니, 이런 결과가 사소하고 소소하고 어쩌면 시시하기까지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한 과정이자 새로운 시작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터득해나갈 삶의 지혜가, 그렇게 만들어갈 미래가 기대됩니다.
어머니의 조기 교육. 끝.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