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
전세권 설정
어머니는 부산 오피스텔에 전세권 설정을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도 동의했고요. 해당 오피스텔의 집주인은 결혼을 앞둔 아들의 서울 집 전세금을 준비할 목적으로 전세 임대인이 되었고, 기꺼이 전세권 설정에 동의해주셨습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전세권 설정은 상당한 힘이 있는 장치입니다. 임차인이 전세권을 설정해두면 은행은 해당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돈을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하는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가로 담보물에 행사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권리를 갖고 있는 설정권자는 그만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임대인이 전세권 설정을 허락해주는 것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재산을 저당 잡히게 두고 싶을까요.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죠. 저는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물론 전세권 설정에는 돈이 듭니다. 전세권 설정을 할 때에는 26만 4천 원의 법무사 비용이 들었고, 지방교육세, 등기신청 수수료 등 각종 공과금으로 29만 4백 원이 들었습니다. 총 55만 4천4백 원의 돈을 들여 제 돈 9,000만 원을 보호하는 가드를 세운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는 대가로 구매해야 하는 서비스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확정일자 받아 우선변제권 갖기
저는 전셋집을 구할 당시에는 어리둥절한 채로 어머니와 공인중개사가 시키는 대로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우 중요한 장치더라고요.
확정일자는 계약서에 받게 됩니다. 동 주민센터에 계약서를 가지고 가서 확정일자를 받거나 온라인으로 확정일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계약서에 날짜와 관할 주민센터를 각인한 도장을 찍어주는데, 이는 도장 찍힌 날로부터 이 계약을 유효하게 생각한다는 확인입니다. 이렇게 확정일자를 받으면 임차인은 '우선변제권'을 가집니다.
우선변제권
주택임대차 보호법상 임차인이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우선변제권은 해당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을 때, 다른 일반 채권자보다 우선적으로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3억짜리 주택에 1억 5천만 원의 전세권이 설정되어 있으면 해당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어 2억에 매각되었을 때 전세권자가 1억 5천을 먼저 받아가고, 나머지 채권자들이 5천을 갖고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확정일자는 계약한 당일에 보통 받게 되는데, 효력은 다음 날부터 발생하게 되므로 계약한 시점으로부터 확정일자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서 근저당권이 설정되면, 우선변제권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근저당권 설정의 효력은 당일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려가 된다면 부동산에 상의를 해서 특약을 추가하면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입신고하고 대항력 갖기
전입신고는 '전입신고를 한 날부터 내가 이 주택에 살 권리를 인도받았음을 신고한다'라는 뜻입니다. 이사를 한 날부터 나의 짐과 나의 몸이 이곳에 살게 될 테니 그때부터 점유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입신고를 늦게 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임차인이므로 임대인과 약속한 이삿날에 빠르게 전입신고를 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온라인 전입신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관할 동 주민센터에 방문하지 않고도 이사일에 전입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일 때문에 잠시 타 지역에 가있었기 때문에 온라인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전입신고는 '대항력'을 발휘하게 해 줍니다.
대항력
이미 발생하고 있는 법률관계를 제삼자에 대하여 주장할 수 있는 효력(**).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 대항력은 '주택 인도'와 '주민 등록'에 의해 생기는 것인데, 이사와 전입신고가 각각 주택 인도와 주민 등록에 해당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전세 임차의 경우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하는 순간부터 대항력을 발휘하여 집주인이 바뀌더라도 새로운 집주인에 대해 임차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하면 주택이 제삼자에게 넘어가도, 경매에 넘어가도 내 돈을 지킬 수 있어 보이는데, 왜 전세권 설정을 하는 것일까요?
전세권 설정, 하지 않아도 된다?
전세권 설정을 하는 대신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하면 된다고 설득하는 부동산중개사가 많을 것입니다. 여러 일을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전세권 설정을 허락해주는 집주인도 별로 없어서, 중개사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를 중개해야 할 일이 더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세권 설정을 했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 역시 "보통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전세에나 그렇게 많이 하는데, 귀찮은 일 했겠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본인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나의 전세금을 틈새 없이 지키고 싶으면 요구하는 것이고, 별 문제없겠다 싶으면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위에 설명한 확정일자, 전입신고와 비교하여 전세권 설정은 다음과 같은 효력이 있습니다.
첫째, 확정일자를 받은 경우에는 확정일자를 받는 것 이외에 전입신고를 하고 주택을 인도받아 실제 거주해야지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권 설정등기는 등기만 설정해두면 전세권자가 전세주택에 거주하지 않고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도 효력이 유지됩니다.
둘째, 확정일자는 동사무소에서 임대차 계약서만 있으면 손쉽게 받을 수 있어 신속, 간편한 것에 비해 전세권 설정등기는 임대인의 협력 없이는 등기 자체가 불가능하고 절차가 복잡하여 비용도 많이 들어갑니다. 또한 전세기간 만료 시 기존에 설정했던 전세권 등기를 말소해 주어야 합니다.
셋째, 전세계약기간이 만료되었는데 임대인이 보증금을 주지 않는 경우,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은 별도로 임차보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판결을 받은 후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지만, 전세권을 설정한 경우라면 판결 없이도 직접 경매신청이 가능합니다.
넷째, 확정일자만 갖춘 경우 임차인은 경매절차에서 별도의 배당요구를 하여야 하지만, 전세권 설정등기를 한 경우 전세입자는 별도의 배당요구 없이도 순위에 의한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처: 확정일자와 전세권 설정등기의 차이점, 서울시민들을 위한 알기 쉬운 복지법률 시리즈 제3편 주거권 p.22.
한 마디로 전세권 설정은 문제가 안 생기면 귀찮고 돈 드는 일에 불과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경매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것은 집주인에게 큰 압박이 되는 카드입니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기본적으로 집의 가치를 낮게 평가받고 넘기게 되는데, 그걸 지켜볼 집주인은 별로 없습니다. 전세금을 어떻게든 구해다가 쥐어주는 게 낫지요. 그래서 전세권은 확정일자, 전입신고보다 훨씬 위력이 있습니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확정일자의 효력은 다음날부터 발효되지만 전세권 설정의 효력은 등기된 당일부터 발효됩니다.
이렇게 전세권을 설정해둔 덕에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좋은 위치의 깨끗한 오피스텔에서 돈 떼일 염려 없이 잘 지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집주인께서 여러 모로 배려해주신 덕분이었지요. 아무리 둘러봐도 전세권이나 보증보험을 허락해주는 집주인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전세권 설정을 해지할 때에는 절차상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