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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Feb 25. 2021

난리법석 전세 보증금 돌려받기 프로젝트

남의 집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


전세권 설정을 해지해달라고요?



 부산 전셋집 2년 만기가 다가오던 2020년 12월, 서울 발령 발표가 났습니다. 3~4년 정도 있다가 올라갈 줄 알았는데, 2년 만에 올라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서울에 월세를 구하러 다녀오고, 부산 집주인과 공인중개사에게는 다음 세입자를 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부산의 해당 오피스텔은 위치가 상당히 좋고 방도 깔끔하게 잘 나온 편이라 집을 내놓겠다고 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또래로 보이는 여성분께서 집을 보러 오셨다가 만족하셨는지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음 세입자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니, 전세권 설정을 해지해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전세권 설정이 되어 있어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내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역시 전세권 설정은 강력한 무기이군, 하고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아 다음 세입자의 전세자금 대출이 불발되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주인의 인격을 못 믿은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상황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전세권 설정을 해지하기 전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다음 전세 보증금을 받지 않으면 전세금을 만들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과 같이 집을 담보로 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에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전세권 설정을 해둔 것인데, 마지막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여태껏 잘 지켜오던 전세권 설정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배려해주신 집주인을 생각하면 그냥 해지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알아봤습니다.



 상무님, 부동산중개사, 법무사 상담



 회사의 상무님께서는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나는 내가 전세를 들어가는 상황이었거든? 그래서 이전 세입자랑 같이 은행에 갔어. 법무사랑 같이 가서 그 자리에서 전세자금 대출 일으켜서 집주인 통장으로 들어가게 하고 전세권 말소를 했지."

 라는 경험담을 들려주셨습니다. "얼른 퇴근해서 잘 얘기해봐"라며 격려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다음에는 서울에서 월세를 구하느라 연락하고 있던 부동산중개사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부동산중개사는 설정을 해지하면 그동안 전세권 설정을 한 의미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니 전세금을 반드시 돌려준다는 확약서라도 받아두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습니다.

 네이버 엑스퍼트를 통해 10분에 만 원을 지불하고 세 번 정도 법무사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평이 좋은 법무사를 선택하여 상황을 설명했더니 전세권을 말소해주는 것은 경매신청권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며, 우선변제권은 남아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다만, 은행에서 우선변제권을 획득하기 위해 주민등록을 잠깐 뺐다가 다시 전입하라고 하면 여기에 대해서는 절대 응하지 않아야 하고, 보증금을 다 받을 때까지는 다른 곳으로 전입을 옮기지 말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또한 상무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 날 전세권을 말소하는 방법을 제안해보라고 했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조언을 구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가에게 상담해보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세권 설정을 해지하시겠습니까?
Yes / No



 물론 제가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알아보는 와중에 부동산중개사와 전세권 설정 담당 법무사의 사무장은 돌아가면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 별 일 안 생긴다고, 어차피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했으니 별 문제없다고 이야기를 했지요. 상무님과 법무사의 조언대로 하루 휴가를 낼 테니 같이 은행에 가서 전세자금 대출받는 것을 확인하고 전세권을 말소하거나, 부동산중개사의 조언대로 확약서라도 써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집주인은 확약서를 작성해 보내주셨습니다. 이에 관해 법무사에게 다시 조언을 구했습니다.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경우의 수들이 존재하나, 집주인이 확약서를 써줬으니 그 마음을 믿고 전세권 말소 신청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 지었습니다.



서류 보관도 똑바로 못하는 멍청이가 나야 나



 전세권 말소에 필요한 서류 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세권 등기권리증
- 주민등록 초본
- 신분증
- 인감도장

 저는 바보같이 전세계약서를 분실했습니다. 집이 넓으면 몰라도 8평(전용면적 기준) 정도 되는 집에 서류를 둘 만한 곳은 다 뒤져봤는데 나오지 않더라고요. 안 뒀을 만한 곳도 찾아봤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추측컨대 회사에 사본을 제출하고서 어딘가에 방치했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원본을 사본으로 착각하여 파쇄를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임대차 계약서야 전세권 말소에 필요치 않았으니 그렇다 치고, 전세 설정에 관한 등기필증은 아무 데도 가져간 적이 없을 텐데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다 작성한 서류를 보관하는 것 하나를 못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울 만큼 한심한 일이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어쩌겠어요. 전세권 말소를 맡아줄 법무사 사무장에게 전화를 해서 방법을 물었습니다.



전세권 등기권리증을 분실했을 때

 


 사무장은 인감증명과 인감도장, 주민등록증 초본을 구비하여 법무사 사무실로 직접 방문하라고 했습니다. 법원등기소에 문의했더니 등기권리증을 잃어버렸을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두 가지 문서에 대한 정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확인조서
: 법무사를 대동하지 않고 직접 등기소에 방문하는 경우 임차인 신분증 확인, 등기권리 상 내용과 일치하는지 확인한 후 등기필증 대신에 확인조서를 첨부

확인 서면
: 법무사가 대리인으로서 확인 서면을 작성하여 등기필증 대신 첨부

 사무장이 말한 서류 등을 구비해가면, 법무사가 대리인으로서 확인 서면을 작성해서 등기필증 대신 첨부를 하는 방식으로 전세권 설정 해지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KTX에서, 미션 임파서블



 또 하나의 비극이 있었습니다. 인감도장은 어머니에게 있었습니다. 인감도장을 고향에 있는 아파트를 구매하고 월세 임대 계약을 할 때 사용했고, 다른 일로 사용할 일이 있겠나 싶어 어머니께 맡겨두고 왔거든요. 저는 당시 서울에 출장을 가있는 상태였는데,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에 고향을 경유하는 KTX를 예매했습니다. 어머니와는 8호차 타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밤 11시경, 어머니께서 플랫폼까지 올라와 열차가 대기하는 1~2분의 시간 동안 저에게 인감도장을 쥐여주셨고, 짧은 접촉 끝에 저는 다시 부산으로, 어머니는 본가로 흩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미션 임파서블 같은 얄궂은 쇼를 한 건가 싶어 웃긴데, 그때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고, 어머니한테도 당연히 엄청 혼났습니다. 전세권 말소를 위한 확인 서면 비용도 13만 원이나 들었거든요. 이제 다시는 서류를 아무 데나 두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며 전세권 설정을 해지했습니다.

 다행히 며칠 뒤에 전세자금 대출을 무사히 실행했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고, 서울에서 월셋집을 구하느라 진땀을 빼는 동안 전세금을 돌려받았습니다.



 문제는 전세금 설정 해지만이 아니었습니다. 전세권 설정 해지와 동시에 부산에서 3~4년은 살 줄 알고 구매했던 퀸 사이즈 침대와 책상, 옷장은 어찌할지, 이사는 어떻게 할지 등과 관련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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