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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Feb 26. 2021

가구 처분이 이렇게 힘듭니다(feat. 당근마켓)

남의 집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


팔거나 버리거나



 부산에서 인생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면서 침대, 책상, 여분의 옷장을 구매했습니다. 침대와 책상은 발령받은 해에 샀고, 여분의 옷장은 그 다음 해 여름에 구매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소 3년은 부산에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예상보다 빨리 서울로 발령이 나면서 옷장을 얼마 사용하지 못한 채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사 견적을 내보면 침대, 책상, 옷장 등의 존재는 비용에 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게다가 당시 서울에 구해뒀던 집(이 집이 나중에 엄청나게 속을 썩이게 됩니다)이 부산에서 살던 곳보다 현저히 좁은 상태인데다가 옵션도 달라서 이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판매 또는 처분했고, 당근마켓을 많이 이용했는데, 요령이 없기도 하고, 발령이 난 날부터 이사일까지 일정이 빠듯해서 꽤 진땀을 뺐습니다.

 


가격 책정하는 법?



 용달 비용 고려하기


 당근마켓에서 가구를 팔 때 판매 가격을 구매 가격보다 낮게 책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용달을 일아보는 것과 용달을 부르는 비용이 심리적 장벽을 굳게 형성하기 때문에 판매 가격과 용달 비용을 합친 금액을 잘 생각해서 가격을 설정해야 합니다. 또는 판매자가 직접 용달을 구해주고 이중 일부 또는 전부를 가격에 반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단골 용달업체가 있다면 더 좋고요. 용달은 무게가 무거울수록, 부피가 클수록 비싸지는데, 용달업체와 에누리를 하는 만큼 조금 더 가격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묶어 판매하기


 처분해야 할 가구가 여러 개라면 묶어 판매해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취를 하는 경우 임시로 거주하는 개념이 꽤 크다보니, 비싼 가구를 구매할 때에 당근마켓을 한 번쯤은 보게 되더라고요. 자취가 많은 지역에 거주하시면서, 판매하려는 가구들이 크게 취향을 타지 않고 가구끼리의 무드가 비슷하면, 함께 구매 시 가격을 좀 더 낮춰주는 방향을 잡으면 충분히 판매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용 기간 및 소모 정도 반영하기


 사용 기간이나 소모 정도를 잘 반영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상처가 나거나 하자가 있는 것은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옳고, 가능하다면 구매한 링크나 사진, 주문 내역을 첨부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1년 미만으로 사용한 것은 판매가를 구매가의 1/2-2/3까지 세팅하고, 용달 비용을 녹이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당근마켓에서 옷장 판매하기



 옷장은 당근마켓을 통해 세 개 가구 중에 가장 먼저 해결되었습니다. H 브랜드 것이었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얼마 쓰지 않은 것인지라 적당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옷장의 구매 가격은 17만 6천 원이었는데, 구매자가 직접 용달을 불러 가져 가는 조건으로 6만 원에 판매했습니다. 최초에 내놓을 때는 9만원으로 내놨으나 구매자가 용달 가격이 6만 원이라며 에누리를 원하더라고요. 안 팔리면 어차피 서울에 갖고 가지도 못하는데 싶어 용달 비용을 반 부담하는 셈 치고 6만 원에 판매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가져가기로 한 당일 오전, 용달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현관 인터폰에 사장님 혼자 모습을 드러내신 게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가씨, 여기 좀 잡아봐요."

 "여기 중심을 잡아야지. 이거 밀어봐요."

 "아니아니, 여기를 들어야지."

 노동력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장님, 옷장 이거 옮기는 데 비용 얼마 받으시는 거예요?"

 "이거? 4만 원!"

 "아... 저한테는 6만 원이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 아줌마가 나랑 잘 아는 사이라서 싸게 해 주지."

 물론 이 또한 그분의 능력이므로 탓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혹은 다른 구매자가 용달을 불렀으면 아마 6만 원이었겠지요. 주변에서는 "너같은 애를 바로 호구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옷장은 무난하게 처리했습니다.



당근마켓? 회사에 기부? 지인 찬스?
책상 처리하기



 책상은 배송비를 제외, L 브랜드의 제품을 9만 9천 원에 구매했던 것인데 직접 가져가는 조건으로 5만 원에 내놨더니 팔리지가 않았어요. 용달이 4-5만 원은 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부장님들께 침대와 책상이 팔리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었는데, 강 부장님께서

 "어? 무슨 책상인데? 우리 사무실 리모델링하잖아. 고객 접견실에 놔볼까?"

 라고 하면서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마침 이런 걸 하려고 했던 거라며 책상을 회사에 가져오고 현금을 줄 수는 없으니 법인카드로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주는 쪽으로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고, 어차피 팔리지도 않는 거, 회사에서 쓰면 좋죠"라며 회사에 기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강 부장님이 대형 SUV 카니발 차주인 김 부장님과 함께 집에서 책상을 빼가셨어요. 그런데 몇 시간 후에 김 부장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책상 원래 얼마에 팔려고 했어?"

 "당근마켓에 5만 원에 내놨어요."

 "내가 책상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내가 살게. 계좌번호 보내줘."

 팔리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았고, 회사에 기부하기로 생각했던 것을 막상 또 부장님께 돈을 받고 팔려니 조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부장님, 돈은 안 주셔도 돼요. 그냥 쓰시지요."

 "아니야. 그건 안 돼."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부장님. 그럼 3만 원만 주세요."

 그래, 알았다고 한 부장님은 5만 원을 부쳐주셨습니다. 그렇게 책상도 정리되었습니다.



침대를 팔려고 했을 뿐인데,
썩은 당근을 만났어요.



 침대를 팔면 가구 처분은 끝납니다. 40만 원가량을 주고 구매한 E 브랜드의 퀸 사이즈 침대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서울에 가지고 가고 싶지만, 당시 가기로 한 집이 좁아서 퀸 사이즈 침대는 무슨, 슈퍼싱글 사이즈 침대를 놓기도 애매해서 1인용 라텍스 토퍼를 쓸 참이었습니다. 팔든, 내다 버리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침대 역시 당근마켓에 내놓았습니다. 채팅이 많이 오긴 했지만 판매는 좀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삿날이 다가오면서 가격은 점점 내려갔습니다. 10만 원 후반에서 중반으로, 중반에서 초반으로, 이윽고 9만 원으로요. 그러다가 한 사람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지인 언니'에게 선물해주고 싶다고요. 제가 이사를 가기로 한 전날 갖고 가기로 하고 예약 중을 내걸었습니다. 약속한 당일 구매자의 '지인 언니'와 용달업체 사장님이 방문했습니다. 사장님이 침대를 해체하셨어요. 그런데 지인 언니라는 분이 매우 뚱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는 에이스 침대 같은 것도 공짜로 당근에 나와 있고 그래요. 크게 좋은 것도 아닌데 비싸게 파시네."

 라고 하셨습니다.

 "이거 40만 원에 구매한 건데 9만 원에 팔게 된 거예요. 쓴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거고 깨끗하게 쓴 거고요."

 이사를 도와주려고 오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다시 날 선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더 비싼 침대 얼마 안 쓴 것도 더 싼 가격에 잘 나와있어요. 그리고 물건은 하루를 써도 중고예요. 동생이 사준다 해서 억지로 사는 거지, 아니었으면 안 사는 건데."

  당근마켓은 판매자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고지한 후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을 형성하고, 구매자는 받은 정보와 가격이 마음에 들면 제품을 구매하거나 에누리를 시도해보고 구매하는 것인데, 애지중지 기분 좋게 썼던 침대를 기분 나쁘게 억지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출장비를 부담할 테니 그냥 돌아가시라고 했습니다.

 "죄송한데, 이렇게 서로 기분 상해가면서 팔고 싶지는 않습니다. 출장비 저희가 부담할 테니 구매하지 마세요."

 "... 그래요? 그래요, 그럼!"

 원래 구매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분께도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장비는 도대체 왜 내가 부담했나' 싶지만 그때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팔고 싶지는 않았어요. 결국 침대는 스티커를 붙여 폐기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사를 해볼까?



 원래는 가구만 아니면 택배로 부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서 택배 상자 커다란 것을 10개쯤 구매해 거기에 짐을 모두 싸 두었습니다. 하지만 택배 상자에 넣기 애매한 물건들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전신 거울이라든지, 무선 청소기 같은 것들이지요. 그래서 짐을 싸 두면 옮기기만 해주는 형태인 반포장 이사 견적을 알아봤습니다. 이사 비용을 알아볼 때에는 '짐싸'라는 이사 견적 어플을 이용할 수도 있고, 당근마켓에서 용달을 검색해 견적을 받아볼 수도 있고, 전국 화물 용달 등에 전화로 짐의 양과 내용물을 설명하고 견적 문의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에누리를 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화물 용달을 이용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짐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용달을 불러 짐을 실어 보내 놓고, 저는 어머니와 함께 본가로 돌아가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새벽 KTX 첫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피곤에 쩔어 있는 상태로 어머니께 해맑게 손을 흔들고 KTX에 올라탈 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날 줄은요.



내가 살아본 전세 이야기. 끝.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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