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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Nov 23. 2022

만족, 희망, 행복

내가 좋아하는 감정들

만족

만족은 ‘마음에 흡족함’,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네이버 국어사전). 만족은 여러 좋음 중에서도 유독 그 감정에 따른 표정이 떠오르곤 한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상상해보면 두 눈을 감고 입꼬리를 부드러이 올린, 광대뼈에까지 흐뭇함이 차오른 얼굴이 떠오른다.


나에게 만족은 기대한 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기분을 말할 때 먹는 것은 빠지질 않는다), 목표한 만큼 좋은 성과를 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 애초에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목표가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하다. 내가 어느 정도로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결국엔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와 연관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어느 정도를 기대치로 삼았을 때’ 만족할 만한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만족은 내가 가진 것들을 인지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 때 나타나는 좋음이기도 하다. 행복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내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충분히 가졌다는 그 느낌이 흐뭇한 만족감을 준다.


희망

만족이 다소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현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라면, 희망은 미래에 대한 감정이다. 현재에 대한 만족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한다. 희망은 미래에 대한 좋은 감정을 묶어주는 감정이기도 하다. 더 즐거울 거라는 희망, 더 잘 해낼 거라는 희망, 더 행복할 거라는 희망, 더 만족스러운 인생이 펼쳐질 거라는 희망,...


그래서 희망은 조심해야 할 감정이기도 하다. 가끔은 불행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허무해지기도 하기 때문에. 희망을 쫓느라 이미 충분히 가진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가진 것들, 그중 아름다운 것들을 못 볼 수도 있고, 인생이 본질적으로 허무한 것과 희망이 무너져서 허무한 것을 마치 다른 것처럼 인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아니, 적당히 그렇게 만들어 갈 거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결말의 여파로 너무 많은 행운이 줄줄이 따라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열정을 데워줄 적절한 당근이자 채찍이 된다.


행복

우리는 행복에 박하다. 조건을 따진다. 마치 하나의 결격사유라도 있으면 행복하지 않은 거라고 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상태가 행복인가?'를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은 때때로 크고 작은 것들이 모여 성큼 밀려오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한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이 '좋은 사람과 맛있는 걸 먹으면 그게 행복이다'라는 한 마디로 행복을 요약해주신 게 또래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곤 했다. 나 또한 그 말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아마 행복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그 별것 아닌 것에 진한 공감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지 10년여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대체로 좋으면 그냥 행복하다고 퉁쳐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불행의 부정이 행복일 수는 있지만 행복의 부정이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그렇지만 마구 행복한 상태가 아니라고 해서 나머지 순간들을 다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불행하다.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쫓고 있는 행복은 왠지 너무 커 보이고, 때로는 멀리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엄청나게 불행한 상태가 아니라면 행복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하고서부터 좀 더 자주 행복을 느낀다.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는 무엇 때문인지를 생각해본다. 아무 생각 없이 순간적인 행복과 순간적인 불행을 느끼던 때보다 이유가 쉽게 떠오른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좋아야 하는 게 분명한 때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 해결방법을 찾기에도, 그 해결방법을 적용하기에도 용이하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체력이 부족해서, 밥을 못 먹어서, 그냥 살다 보니 으레 느껴지는 감정일 뿐인 것 등 몇 가지 고만고만한 이유들이 있다. 그리고 또 고만고만 소소한 해결책들을 시도하다 보면, 오늘도 잘 살아낸 내가 된다.


엉망진창이기만 하루는 아니었을 테니, 이 글이 누군가에게 오늘 내게 어떤 좋음이 있었는지 찾아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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