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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08. 2023

빠르고 쉽고 편한 것이 가져다주는 멍청함과 게으름

기록을 해야 한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저자 김영민 교수님과의 대담에서 교수님은 쉽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여러 번 읽으면서 음미하면서 한 번 한 번 읽을 때가 다른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하셨다. 나는 그렇게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멋진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대부분의 것에 대해 불편한 게 감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빠르고 쉽고 편한 것은 그야말로 빠르고 쉽고 편해서 좋은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느리고 어렵고 불편해서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쉽고 편한 것이 나를 멍청하고 게으르게 만들고 있다.


나는 기록해두지 않은 것의 대부분을 잊곤 한다. 처음에는 ‘왜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 멍청이냐?’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기억 안 해도 되지, 뭐!’로 생각이 기울었다. 기록해두지 않은 것, 기억이 안 나는 것은 내가 간직해야 할 기억이 아니며,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10분 안에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버렸다. 30년을 살아오면서 단순무식하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도 체감했고. 그냥 편한 대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대신 다른 역량이 자랐다고 하면 될 일이다. 자료 조사를 빠르게 하는 능력이 있고, 하나를 깊이 있게 파고들지는 못해도 아주 얕은 수준으로 여러 가지를 대강은 알고 있어서 조사의 실마리 정도는 갖고 있다고 해야 하나? 요리는 못하지만 레시피를 순식간에 찾을 수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스스로가 빈 깡통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찌그러뜨리면 부피가 형편없이 작아지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재료만 주고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끔찍한 혼종 찌개를 만들 것이다.


나는 어렵게 얻어낸 것을 더 오래, 진하게 간직해 왔다. 여행을 떠올릴 때에도 마냥 좋기만 했던 것보다는 갑자기 비가 왔다거나 열차를 놓쳤다거나 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비를 피하고 버스를 찾아 탄 것이 더 강렬하게 기억난다. 쉽게 쉽게 알아낸 것보다 어렵게 갖은 노력을 들여 공부하고 시도한 것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된 것도 그런 의미 아닐까? 실패했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성공을 낳게

되니까. 그 느리고 어렵고 불편한 길을 간 거니까.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게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기록을 해야 하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느리고 어렵고 불편하도록 말이다. 정말 잊고 싶지 않은 것, 소중한 경험들은 잘 적어 둬야 한다. ‘이렇게 좋은 것은 나중에도 꼭 떠오를 거야’라고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떠오르지 않은 것을 떠오르지 않았다고 알 방법은 없다. 그래도 왠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살아오는 동안 내가 경험했던 좋은 것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앞으로의 내가 가끔은 일부러 느리고 어렵고 불편한 길을 걸어보길, 일부러라도 걸을 길이 거칠더라도 불평만 하기보다는 길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고속도로와 하늘길을 열 생각을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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