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과 자기 개발
고등학생 때 자기 ‘계발’과 자기 ‘개발’ 중 어느 것이 맞는 건가 싶어서 사전을 찾아본 적이 있다(이런 건 왜 찾아보는 걸까? 논술 준비를 하고 있었나?). 두 가지를 번갈아 찾아보다가 나는 ‘계발’이라고 쓰기로 마음먹었다.
“좋아, 난 ‘계발’로 정했어!”
마음먹었을 때의 그 느낌은 선명하게 생각나는데, 개발과 계발의 정확한 뜻은 기억이 안 난달까.
그렇게 ‘자기 계발’이라고 줄곧 써왔는데, 최근 몇 년간 자기 계발이 핫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다시 정확한 뜻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맞고 틀림을 보자면, 둘 다 맞다. 예전에 찾아봤을 때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다가 결정했었는데, 다시 검색해 보니 나 같은 생각을 갖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이럴 때는 한자어까지 보는 게 좋다. 나는 계발의 ‘계’가 ‘이을 계’ 일 줄 알았다. 꾸준히 펼쳐 나간다는 뜻인 줄. 근데 찾아보니 ‘열다’ 할 때의 ’열 계‘였다. 다시 말해 개발이나 계발이나 ’열고 펼친다‘는 똑같은 뜻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라는 사람을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적어도 당시에 내가 찾아봤던 뜻풀이와 현재 이 사전의 뜻풀이가 같거나 비슷한 맥락이라는 전제 하에, 나는 ‘계발’의 뜻풀이 중 ‘슬기’와 ‘일깨워 줌’에 꽂혔을 가능성이 높다.
‘슬기’는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처리해 내는 재능’이라는 뜻이다. 나는 ‘사리’, ‘이치’, ‘진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일의 이치라는 말.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으면서도 있어야만 할 것 같달까. 뭐 하여튼 얼마든지 쌓을 수 있는 지식이나 주로 주어진 것에 많이 쓰이는 재능이라는 말보다는 지식과 재능이 같이 쓰이고 오래 묵어야만 가질 수 있는 ‘슬기’라는 말이 좋다.
다른 영역에 있는 사람, 나보다 훨씬 앞서나간 사람들로부터 받는 띠용 모먼트가 좋다. 무언가를 접했을 때 깨닫는 느낌, ’와~‘ 하는 그 느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일깨워 줌’은 매력적인 뜻풀이이다.
사실 개발이나 계발이나 그 말이 그 말이고 그 뜻이 그 뜻이고, 뜻풀이에 쓰인 단어들조차 개인이 단어마다 가진 민감도가 높지 않으면 크게 다르지 않을 말이지만 10대 후반의 나는 ‘계발’을 선택했고, 20대 후반(만으로ㅋ)의 나 역시 ‘계발’을 선택했다.
언젠가 한 번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글인데 드디어 써냈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