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증명일 때
실패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성취의 경험
언젠가 의문이 든 적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내가 더 잘 될 수 있다고, 더 노력해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뻑인가?‘
이윽고 그 기대는 입시를 준비하면서 삶의 초반에 경험했던 몇 번의 성취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통해 스스로에게 ‘성취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성적을 잘 받겠다는 의도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을 탐구하는 맛에 흠뻑 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이 가져다 줄 거라고 믿는 그 이후의 그럴듯한 삶을 기대하며 공부할 뿐이다. 실제로 그럴듯한 삶이 펼쳐지든 그렇지 않든,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과정에서는 실패를 겪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끝내 성취하는 경험을 얻게 된다. 내게는 그 기억이 남아 스스로가 ‘결국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실패도 결국 극복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선생님들은 성적도 잘 받아본 놈이 잘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맞다면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성취를 지속적으로 해내기 전 최초의 성취는 어떤 동력으로부터 이뤄지는가? 즉, 최초의 동기부여는 어디에서부터 이뤄지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의 일부는 결핍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인정에 대한 욕구, 기왕이면 제일 좋다는 대학에서 공부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희망,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동기가 어떻든 간에 결국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간과 기회에 대한 배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을 생각해보자. 나는 12년의 시간을 지나 겨우 하나의 방점을 찍었고, 대학생활 5년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겨우 또 하나의 소결을 맞이했다. 기회는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버텨 스스로를 벼려야만 기회를 맞을 수 있고 그 기회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물며 이것은 대입, 취업이라는, 때가 되면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기회가 주어지는 관문인데, 기약이 없는 기회는 어떠할까. 생각보다 지루한 길일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성공을 거머쥐려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의 나 역시 길고 긴 시간을 들여서도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내가 제대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 방황할 수도 있고,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갈 수도 있다. 시간이 들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부터라도 행동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어떠한 일에 대한 성취의 시점이 몇 년이 걸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그 시기가 점점 늦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중에는 지금보다 몸과 마음이 더 굳어진다. 그게 노화이든 고착화이든 여러 이유로 안정적인 상태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절대적인 나이 같은 건 모르겠다. 다만 더 나이 든 나와 덜 나이 든 나를 비교했을 때는 덜 나이 든 지금의 내가 행동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은 알았다.
하나 더, 그 긴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중간중간에 작은 성취를 할 수 있도록 작은 목표를 넣어줘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수능을 보기 위해 12년간 내가 본 시험이 도대체 몇 번일까. 그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실패를 해볼 수 있었고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었고 고치려는 노력을 해보고 끝내 결실을 맺는 경험을 해볼 수도 있었다.
영민해야 한다. 쉽게 나태해지는 자신을 붙들어야 하고, 쉽게 지루해하는 자신을 위해 재롱을 떨어야 한다. 마치 편식하는 아이에게 시금치를 먹이려고 노력하는 부모님이 된 것처럼 말이다. 달콤한 디저트, 하루치 플렉스, 일주일치 휴식 등 보상을 주는 것도 좋고, ‘내가 이거 안 하면 10만 원 친구 준다‘처럼 손실에 대한 경고를 주는 것도 좋다. 재미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기나긴 퀘스트를 깨기 위해 잔잔한 게임을 하면서 경험치를 쌓는 것처럼 그렇게 작은 것들을 하며 목표까지 도달하는 지루한 과정을 재밌게 만들어줘야 한다.
좋은 성적, 좋은 학교 그 자체가 나를 밥 먹여주는 건 아니더라도, 성적을 위해 노력했던 과정은 확실하게 나의 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