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거지
오늘 하루가 역시나 재미없이, 별로인 채로 지나갔다는 막연한 느낌이 있다. 그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한 번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짜 별로였나?
아마도 높은 비중의 사람들이 진짜 별로였다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이다. 동료들과 소소한 재미가 있었고,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었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두 눈이 반짝였을 것이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어릴 적 기독교 유치원을 다녔다. 길어지는 원장선생님의 기도, 7세의 나는 실눈을 한쪽으로 뜨며 생각했다.
'일용할 양식을 주님이 주신다는 게 무슨 말이야? 농부들이 일해서 나온 거 아냐?'
주님이 주시든, 농부들이 주시든, 내 밥벌이 내가 하든,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게 감사할 일인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야무지게 수다를 떨어주는 동료나 친구들이 있다는 것 역시 감사할 일이다. 유튜브, 넷플릭스가 사람을 멍청하게 한다고 하지만,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밌는 것도 사실이다. 최소 3종 세트가 모여있는 이 하루가 별로이긴 힘들다.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아닌데, 아닌데~ 완전 별로였는데~"
본인을 굳이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면 말릴 도리는 없다.
조금 더 시대정신을 생각할 수는 있다.
"밥 굶지 않는 게 최대의 문제이던 때는 지나갔어. 요즘 세대는 고민을 하는 세대라구!"
고민을 하고 자아를 찾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과 내 하루가 별로인 것을 분리해야 한다.
고민은 고민대로 하고, 하루는 하루대로 기분 좋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온전히 이 하루를 마음에 들게 꾸리고 있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래도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고민과 피부로 와닿는 현실인 오늘 하루를 최대한 분리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불만에 가득 차 있기만 할 때가 있었다. 아주 보람찬 일, 존재론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맛있는 걸 잘만 먹고 좋은 사람들과 잘만 떠들고 웃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하루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 그것이 스스로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내팽개쳐 버리는 길이라는 것을 몰랐다.
진짜 이 하루가 별로였는지, 좀 더 나아지면 그때의 하루와 오늘 이 하루가 얼마나 다를 것 같은지 등을 한 번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별로라고 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딱히 불행한 이유를 열거하기 어려우면, 그냥 행복한 거라고, 그렇게 정의 내려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