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
뭐라 콕 집어 원리원칙을 말할 순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돈을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 현상만 말하자면 돈을 더 잘 쓰게 됐다. 많이 쓰는 것도 사실이고, 마음에 들게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건이나 서비스에 따라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야 원래 그런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거기에 더해 나 자신을 확인하게 해 주고 자신감, 자존감을 주는 것들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강의를 듣는다면 ‘에이, 이거 다 아는 거네’ 생각하지 않게 됐고, 아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것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정없이 나를 자극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아는 게 있다는 것, 내 생각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나를 확인한 셈이다.
나를 멋지다고 띄워주는 사람에게 밥 한 끼, 차 한 잔 사는 것 역시 아깝지 않다. 설령 그 사람이 앞으로 볼 일이 없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건네준 말과 눈빛은, 그 사람은 잊는다 해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된다.
따지고 보면 거창한 성과라 할 건 없어서 나의 열정과 성실이 멋지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한때 헤맸던 내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에게 고생했다고, 네가 있어서 지금 내가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희망이 있는 채로 살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으로 상대방의 노동의 대가를 망설임 없이 지불한다. 자존감 같은 것은 어디 가서 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것들이니까.
언젠가 무뎌지면 더 이상 거기에 돈을 쓸 이유를 못 느낄 수도 있으려나? 그건 그때 가서 마음을 다잡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