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잘 사는 진리 Jan 27. 2023

나는 나를 잘 안다 는 것을 잘 안다

룰루

최근에 알쓸인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다른 분들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천문학자 심채경 교수님의 팬이 되었다. 교수님의 말투, 말씀하시는 내용 하나하나가 따뜻했다. 무게감 있는 사랑스러움? 그런 건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심채경 교수님이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히 ‘교수님이 나와 대화하는 것도 즐거워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고, 나도 쬐끔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나를 제법 잘 아니까.


새해가 되고 나서 회사에서든 나만의 회사에서든 내가 기대했던 일,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쏟아지고 있다(물론 쏟아진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그중 하나가 온라인 클래스를 제작하는 일이다. 몇 개월 뒤에 나오겠지만, 자기소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꼭지 집어넣었다. 자기소개만으로 그 사람에 대한 묵직한 기억을 남기는 사람들은 이름, 나이, 직업 말고 다른 것들을 이야기한다.


다른 것을 이야기하려면,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 자기소개를 하면 재밌다. 매력적이다. 그냥 ‘넷플릭스 보는 게 취미예요’ 하는 것과 ‘저는 한 명의 천재가 빌런들을 해치우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고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왜 어떤 사람은 태도만 봐서는 자신만만한데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고, 어떤 사람은 겉모습만 봐서는 연약해 보이는데도 강인한 자신감이 느껴질까? 그 차이에 대한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자기 자신을 잘 아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지 않을까?


여하튼 나는 내 경험으로 이런 게 스스로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껴서 그런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게 과학적인 건가?' 하는 생각은 들던 차에 심리 상담 콘텐츠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하게 됐다. 마인드웨이라는 곳에서 나온 ‘마음여행’ 키트였다. 마음여행은 심리 상담을 가는 것 절반의 가격으로 마음여행, 즉 심리 상담을 해볼 수 있는 콘텐츠이다. 여러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나는 ‘나다움편’을 해보고 있다.


1주 차부터 4주 차까지 총 네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스타에서 광고를 보고 궁금해져서 구매하게 되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전개되는 내용도 좋았고, 나다움과 나에 대해 마음껏 대화를 해보게 하는 질문들도 좋았다.


나다움이 뭘까? 나다우려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나답게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 있으니까. 사실은 나는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해서 제법 쉽게(어쩌면 마음을 터놓는 거니 마냥 쉽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답을 써내려 갔다. 그중 내가 커리큘럼에 넣었던 자기소개와 정확히 일치하는 페이지를 찾게 됐다. 이름, 나이, 직업 말고 조금 낯선 방식으로 자기소개를 해보자는 것이었다(물론 이 부분은 책의 극히 일부다). 나야 뭐, 준비되어 있었으니(우쭐) 문제없이 자기소개를 할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나를 알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내가 나를 소개하는 내용도 꽤나 산뜻(?)했고, 클래스에 들어갈 내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게 되어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알게 되는 건 난시가 심한 사람이 안경을 쓰고 또렷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안경을 쓰지 않고도 그런대로 잘 다닐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경이나 렌즈 없이는 집 밖에 나가기가 어렵다. 무척 답답할 것이고 하루종일 찡그리고 있을 것이다. 또렷하게 보이지 않아도 자주 가던 길을 가는 건 문제가 없겠지. 하지만 새로운 길을 가기는 어려울 것이고 가던 길 역시 안정적인 기분으로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세상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흐릿하고 답답하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봐도 돌아오는 것은 혼란과 불안일 뿐이다. 애석하게도 세상을 단순하게 만들 수는 없다. 내가 안경을 써야 한다. 세상의 형태를 바꾸는 게 아니라 시력을 교정해야 하는 것처럼, 세상에게 나를 좀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관심 대상은 무엇으로 삼을지, 어느 길로 가볼지가 나오는 법이다. 그래야 자신감 있게, 안정적으로 걸어갈 수 있다.


물론 '나를 잘 안다'라고 하면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잘 안다'는 건 어디까지가 잘 안다는 것인가? 하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알쓸인잡에 나오는 김영하 작가님도 농담처럼 과학자인 김상욱 교수님이 그런 질문을 하실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그런 분들조차 스스로를 알려고 노력하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너는 너를 잘 모르는 거야'라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이다. '나'와 '안다'는 것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되려 그런 질문을 하는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관찰하기 위함이지(어쩌면 고민해야 하는 그 자체를 즐기시는 걸지도 모르고) 남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다. '네가 너에 대해서 뭘 알아? 넌 모르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남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잔소리하고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본인이 다 옳다는 듯 타인의 약점을 파고들어 본인을 숭배하게 만드는 사이비 교주, 또는 스스로를 알기를 포기하고선 다른 사람도 본인과 같은 사람이길 바라는 안타까운 이와 다름없을 테니.


무튼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냥 나고, 안다는 것은 그냥 아는 것이다. 그 조건 속에서의 나를 알 준비가 되어 있으면 더 엄밀한 조건이 붙어도 답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고, 나는 범인이기 때문에 나와 앎을 규정하기 위해 시간을 쏟는 것보다는 느낌적인 느낌에라도 맡기는 것이 스스로에게 조금 더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해지기로 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마리오가 큰 마리오가 된 기분? 내가 나를 잘 알아가는 것이, 최소한 현재의 나를 잘 관찰하는 것이 여러 모로 하루하루를 기분 좋게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기대되는 요즘이다.


그나저나 이 글은 내가 나를 잘 안다는 자랑(?)과 마음여행의 후기와 내 클래스의 스포가 짬뽕 되어 버렸네. 허허.

매거진의 이전글 3년 걸릴 일이면 3년 반 걸린다 생각하지 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