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안 보면 후회함
저는 쓸데없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피곤하게 산답니다^^
‘이거 안 보면 후회함’, ‘이거 모르면 후회함’ 이런 말들을 보면 꼭 드는 생각이 있다.
MBTI N인 나의 생각은 이렇다.
어떻게 ‘안 보는데’ 후회를 할 수 있을까? 인지를 하지 못했는데 후회를 할 수가 있나? 내용을 알아야, ‘이거 몰랐다면 (언젠가는 알게 되었을 테니) 시행착오를 겪을 뻔했네’ 하는 게 아닌가?
보는 것과 안 보는 것, 후회하는 것과 안 후회하는 것으로 4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 수 있다.
- 보면 후회한다
내용이 뭐 이따위인데 썸네일로 어그로를 끌었어?
- 보면 안 후회한다
오 알면 좋을 내용이네!
- 안 보면 안 후회한다
1) 내용을 어차피 모르니까 영상을 안 본 것을 후회할 수는 없음
2) 혹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임
- 안 보면 후회한다
1) 지금은 지나치더라도 나중에는 영상을 보고서 그때 이 영상을 안 보고 지나친 것을 후회한다
2) 내용을 몰라서 실컷 시행착오를 겪고 나중에 깨달아서 영상 시청 여부와 무관하게 내용을 일찍 알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영상과 썸네일 제작자의 본래 의도는 '이 영상을 보면 당신은 꿀 정보를 분명 얻어갈 것이므로 영상 시청에 시간과 다른 영상을 볼 수 있었던 기회비용을 쓴 것을 안 후회 한다', 축약해서 '보면 안 후회한다'가 가장 맞는 말이었을 것인데, 안 보면 후회한다는 말로 혹시 모를 손실에 대한 걱정을 하도록 만들어 시청자를 유혹한 것이다.
우리가 보통 후회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때 그걸 했었어야 하는데’ 하는 경우이다. '이거 안 보면 후회함'에서 '후회의 대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영상을 시청하지 않은 것, (시청과 무관하게) 내용을 모르는 것이다. 영상 제작자의 의도에 따르면 '내 영상 제발 봐줘!'인 것이니, '영상 시청여부' 쪽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시청을 안 한 것을 후회하려면 첫째, 이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고, 둘째, 영상에서 언급하는 주제에 대한 나의 행동이 있어야 하며, 셋째, 그 행동이 이 영상에서 나온 내용을 알았을 때보다 미진해야 하고, 넷째, 나는 이 영상을 언젠가는 꼭 봐야 하고, 다섯째, 영상의 내용은 충분히 나를 혹하게 만들거나 사실에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때 이 영상을 봤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삼성전자를 9만 원에 들어갔는데, 삼성전자 주식에 관한 영상, 썸네일에 '이거 안 보면 후회함'이라는 문구가 적힌 영상은 가격이 하방 압력을 받아서 5만 원도 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나는 매수를 하기 전에 이 영상을 썸네일만 보고 지나쳤다가 매수를 하고 나서 보게 되었다. 그러면 이 영상을 안 본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삼성전자 8만 원 간다는 내용의 영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안 보고서 9만 원에 매수했다가, 나중에서야 이 영상을 보고서, 구구절절 옳은 말인 데다가 이 내용을 봤다면 내가 충분히 설득당해서 9만 원에 사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을 것이라, 영상을 안 봤던 것이 후회된다'는 것이다.
즉, 나의 행동과 관련된 영상의 존재 인지, 나의 미진한 행동, 행동과 시간차를 두고 이후에 영상의 내용 인지, 영상의 설득력이라는 조건들이 갖춰져야 ‘안 보면 후회’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정리하면, '이 영상 안 보면 후회함'이라는 문구를 쓴 썸네일 및 영상 제작자는, '당신은 내가 지금 이 영상에서 말하는 것을 분명 모르고 있을 것이며, 이것을 안다면 당신은 훨씬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알겠으나, 그 말이 성립하려면 지금은 영상을 보지 않고 지나갔던 사람들의 경우 나중에는 다시 이 영상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댓글로 '와, 이거 안 보면 진짜 후회할 뻔했어요'라는 내용을 적은 시청자들 역시, 영상을 지금 안 봤어도 언젠가는 본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그 말이 타당한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안 보면 후회한다'라고 적힌 썸네일은 대부분 클릭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에겐 10초 건너뛰기와 2배속이 있으니까!
와, 오늘도 쓸데없는 생각으로 짱구를 잘 굴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