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해지기 싫어서 노노
나는 내가 멍청하다는 것을 잘 안다. 나도 내가 옳다고 말하고 싶고 똑똑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고집을 부리며 내가 옳다고 아득바득 우길 때도 있었지만(사실 요즘도 그런 때가 있나...) 슬프게도, 실상은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 게 절대적 사실이다.
멍청한 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말과 글이다. 그래서 말과 글만 좀 조심해도 멍청한 티를 덜 낼 수 있다.
말을 할 때에는 이해가 안 되는 건 안 된다 하는 게 가장 간단하다. 경험상 처음이 중요하다. 한 번 멍청한 걸 부정하면 제대로 된 지식이나 통찰을 얻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자기 고집을 기왕 내세운 김에 끝까지 가려는 끈기(?)가 생겨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 자체를 차단하게 된다. 그러니 처음부터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이야기할 준비를 하면 대화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편안하다.
멍청한 걸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숨길 일도 아니다. 숨기지 않는 것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한 끝 차이다. 경험상 멍청한 것은 언젠가는 들통나게 되어 있다. 그래도 멍청한 것은 떳떳할 일은 아닐지라도 지탄받을 일도 아니다. 멍청한데 인정하지 않는 것과 멍청하다고 욕을 하는 것은 둘 다 좀 그렇다.
글을 쓸 때는 두 가지다. 첫째, 사실 관계는 검색을 한다. 사실, 사실을 잘 쓰지 않는다. 사실도 바뀔 수 있다. 그 사실이 바뀌는 것을 일일이 캐치해서 말해줄 수 있을 만큼 공부할 자신은 없다. 그런 영역에서는 사실보다 경험을 인용한다.
둘째, 맞춤법 검사를 꼭 한다.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든 브런치의 맞춤법 검사기든 검사를 한 번 돌린다. 그 능력 있는 존재들이 문맥에 따라 이리저리 쓸 수 있는 맞춤법까지 잡아내지는 못하지만 어차피 이쯤 돼서는 내가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한 것이 더 중요해진다.
특히 맞춤법에 관해 내가 갖고 있는 습관은 내가 제대로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맞춤법을 다 맞힐 수는 없지만 주로 틀리는 맞춤법이 뭔지는 알고 있으면 틀리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 탐색 탭에서 맨날 나오는 게 그런 거다. ‘한국인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 같은 것들. 확실하게 머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꼭 검색을 한다. 나의 웹 브라우징 앱에는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 국어사전, 영어사전이 항상 켜져 있다.
사실 가끔은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틀리게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더 조심하게 된다. 그런 일이 잦으니까 그냥 ‘어차피 찾아볼 거’ 하면서 아예 머리에 안 넣는 것들도 생겼다. 허허.
메시지로 대화를 하는 와중에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중에 헷갈리는 게 있어도 검색을 한다. 만약 말한 게 틀렸다면 지적해 주는 게 옳을까 그냥 지나가는 게 나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넘어간다. 그 사람이 얻는 효용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에게 느낄 감정도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나도 딱히 얻는 게 없다. 그거 한 번 지적해 주고 얻는 희열보다 새콤달콤 하나 먹고 얻는 희열이 더 크다.
타인의 멍청함을 지적하는 순간 어디까지를 지적받아 마땅한 멍청이라고 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나의 멍청함도 누군가에게 지적받아 마땅해진다. 상식은 소속집단에 따라, 성격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난 의학에 대한 건 하나도 모른다(사실 모르는 게 태반이지만 의학은 많이 전문분야니까 인용해 봤다). 개인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주변에서 아무리 말해줘도 인지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틀릴 사람은 계속 틀린다.
다만 나는 다음에 틀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검색을 한다. 머리에 안 들어와서 그다음에도 또 검색을 하는 일이 많다. 틀리는 일을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고, 틀릴 수 있지만 틀리지 않으려는 노력도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