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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29. 2023

1호선, 2호선 신도림 환승 통근러의 지하철 실험실

지하철에서만 1시간

“누님, 집 가는 데 1시간 30분 걸리잖아요.”

“야야 길동(가명)아 그 정도는 아니야. ... 잘 맞추면 1시간이면 가.”

길동이가 ‘잘 맞춰서 1시간?‘ 하며 푸힝힝 웃는다.

본인은 잘 맞추면 45분 걸리면서.


회사에서 먼 곳으로 이사 온 지는 한 달이 되어간다. 지하철에 몸을 싣는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지 설계하느라 첫 1주를 보냈다. 몇 시에 출발해야 앉아서 갈 수 있는지, 어떤 사람 앞에 서면 곧 앉을 수 있는지, 뭘하면서 가면 시간이 잘 가는지 연구도 했다.



이하는 나의 지하철 실험 일지 내용으로부터 깨달은 중요한 사실들.


1. 건강

컨디션을 잘 챙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며칠 전에 몸이 안 좋았는데, 퇴근할 때 정말 힘들었다. 가능하면 감기도 안 걸리는 게 좋다. 잠을 6시간 이상 자고, 최대한 운동을 가려는 이유다.


전에 살던 자취방은 회사까지 도보 10분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도 퇴근을 앞두고는 ‘그래도 집 가까우니까 참 좋네’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원래도 컨디션을 챙기기 위해 운동을 다니긴 했지만 이제 더 챙겨야 한다.


버티기 위해서!


2. 선택

더 일찍 일어나서 앉아서 갈 것이냐, 푹 자고 나와서 서서 갈 것이냐 사이의 선택이다.

아침 운동을 갈 것이냐 저녁 운동을 갈 것이냐 사이의 선택이다.

8시 반까지 출근할 것이냐, 9시 반까지 출근할 것이냐 사이의 선택이다.

그냥 갈 것이냐,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한 물건을 다시 챙기러 집으로 갈 것이냐 사이의 선택이다.


3. 배차 20분은 기만이야

1호선은 문제가 많다. 퇴근할 때는 기다리는 줄이 반대편 영등포 방향 스크린 도어 앞까지 길게 늘어선다. 신도림에서 구로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으면 특급, 급행, KTX 광명 방면으로 가는 열차가 오는데, 뭐 하나 놓치면 배차 간격이 20분일 때도 있다.


나는 지난 10년 간 통학이든 통근이든 거의 2호선만 타고 다녔기 때문에 1호선이 이 정도로 헬일 줄은 몰랐다. 2호선 탈 때 그랬던 것처럼 ‘어휴 다음 차 타지, 뭐’ 했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밀리의 서재와 유튜브가 없었다면 충분히 화날, 아니 사실 있어도 짜증 나는 상황.


4. 한계

앉은 사람 중 누가 특정역에서 내릴까 하는 것은 사람이 별로 없을 때나 유의미한 고민이다. 지하철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내가 앉은 사람들 앞에 바로 서있을 때나 누가 내릴지 관찰하는 게 의미 있지, 사람이 앞뒤, 좌우로 몇 겹씩 엄마손파이처럼 꽉 껴 있을 때는 의미가 없다. 그냥 얄짤 없이 서서 가는 것이다.


어쩌다가 앉아 가게 되면 그날은 ‘오늘 운이 좋은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빠른 환승인 칸에 타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다. 환승역에 도착해서 재빨리 달려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환승해서 가면 이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머지는 군자는 뛰지 않는다는 마인드. 어차피 걸음 수로 따지자면 빠른 환승이나 아닌 곳이나 총량이 비슷할 듯하다.


5. 앉고 싶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앉을 기미가 보이는 밀도인 경우를 가정해 보자. 퇴근길에는 젊은 여성, 학생으로 추정되는 사람 앞에 서있으면 강남역에서 앉을 확률이 높다. 출근길에는 헤드셋을 낀 남성분 앞에 서있다가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앉을 확률이 높다. 오늘도 그렇게 앉았지^^v


물론 적용이 안 될 때도 있다. 역시 운빨.


6. 템빨

출퇴근하면서 느낀 건, 가벼운 소재의 백팩 또는 크로스백이 필요하다는 것. 첫날 원래 들고 다니던 필인더블랭크 왕 큰 가방을 들었다가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 가방은 죄가 없다. 내가 보부상이다. 나처럼 아이패드나 노트북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사람이면 패브릭, 나일론으로 된 커다란 가방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가방을 샀다. 왕 커서 만족. 근데 초록색 가방이라 엄마가 기겁할 것 같아서 엄마가 같이 사는 동안은 못 꺼낼 듯. 엄마도 내 글 보니까 이제 알 듯. 그럼 그냥 들고 다니면 될 듯.


와중에 기타 메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다. 남자친구가 대학생 때 4호선, 2호선을 거쳐 편도 2시간 넘는 시간을 통학하면서 기타를 매고 다녔었는데, 그때 그 고충을 못 알아줘서 미안하다.


무선 이어폰은 필수다. 한 번은 아침에 일찍 나왔다가 에어팟을 안 챙겨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적 갈등을 심히 하다가 결국엔 집에 돌아가서 에어팟을 쥐고 나왔다. 마음이 든든해졌달까. 원래 이어폰을 한쪽씩 번갈아가면서 꼈는데, 이제 양쪽 다 꽂아 쓴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모델은 아니지만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기에 충분하다. 로파이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출퇴근을 한다.


카드 수납 케이스 및 그립톡이 제법 도움이 된다. 카드 수납 케이스 덕에 지갑의 최적화를 완료했다. 내가 갖고 있던 것은 아래 케이스인데, 친구의 추천을 받아서 샀다. 물론 그때는 가까이에 살 때다. 그립톡 없이는 너무 맨질맨질한 경향이 있다. 이 제품이 질린다면 마찰력이 잘 작용하는 소재의 카드 수납이 되는 귀여운 케이스를 사야겠다.


그립톡은 브리즈피에서 샀다. 폰 케이스가 워낙 화려하니 그립톡은 단조로우면서도 색 조합이 맞길 바라면서 샀던 건데 세트처럼 조화로워서 마음에 든다.


그리하여 완성된 나의 폰케이스


신발도 서있을 때 편해야 한다. 후드나 맨투맨, 청바지에 운동화 말고 재킷에 로퍼를 신고 다녀볼까 싶다가도 지하철 생각하면 바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출퇴근 한 시간씩 서있으면 발목이 굳는 느낌이 든다. 서서 일하는 사람들은 진짜 힘들 것 같다.


이제 내려야 한다. 추가되는 내용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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