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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01. 2023

횡단보도, 카페, 이케아에서 흥미로웠던 일들

MBTI N 입증

 며칠 전 강남 한복판의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되어 길을 건너는데 건너편 사람들이 아무도 걸어오지 않았다. 다섯쯤 되는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길을 반쯤 건너고도 ‘읭?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하고 초록불을 다시 확인했더랬다. 아마도 누군가는 신호에 맞춰 건너겠거니 하는 믿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초록불이 된 지 10초가 지나서야  건너편에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들고 발걸음을 뗐고, 나머지 사람들도 일제히 길을 건넜다.

 나는 마치 실험체가 된 기분이었다. 왜 그런 유명한 실험 있잖은가. 짧은 선과 긴 선 중 어느 것이 긴 선인지 물어보는 실험. 피험자는 명백한 답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짧은 선이 더 길다고 말해서 거기에 동조하는 그런 실험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남의 반응을 보고 따라가면 되겠지 생각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정답과는 관계없이 남에게 나의 행보를 맡기고 살아가기도 한다는, 과장된 결론도 내려보았다.


 또 다른 인상적이었던 일. 카페에서 정전이 된 적이 있었다. 누군가는 화를 내거나 조치를 취해달라고 내려갈 줄 알았는데,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거기에 포함이었다. 나는 약속을 가기 전 잠시 작업을 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고, 정전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어쩌면 마찬가지였을지도. 대화를 하는데 굳이 환한 불빛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얼마 후 직원이 올라와서 이 일대가 다 정전이 됐다며 정전이 길어질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카페를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각자가 할 일을 했다. 재밌는 광경이었다. 예민한 현대인의 모습보다는 그냥 무던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에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내가 편견에 갇혀 사람들을 예민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이케아에 갔는데 어떤 꼬마애가 엄마한테 말하기를,

“엄마! 사람은 죽어야 전설이 된대!”

호오. 이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인지? 나는 몰래 아이 어머니 되는 분의 반응을 기다렸다.

“어...? 누가 그래?”

적잖이 당황하신 모양이다. 나도 궁금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줬을까?

“TV에서!”

만화 원피스라도 본 게 아닐까? 나는 내 아이가, 아니 꼭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어떤 어린 존재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대답해 줄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상적인 모습처럼 ‘그건 말이지~’라고 운을 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 손이나 잘 잡아! “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제법 짱구를 오래 굴려봤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전설이 안 되어도 좋으니 무병장수 하고 싶다’

는 것이었다. 어린아이에게 희망이 되어줄 책임이 없는 자의 무책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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