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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31. 2023

자소서 쓸 때 제발 명심해줘..

열정만 그득했던 내가 떠오르는군

“선배님, 저는 아이디어가 고갈됐습니다.“

벌써 열흘 째, 3월 마지막 날이 마감이라기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감 하루를 앞두고 아이디어 고갈을 선언하는 지원자. 그럴 만도 하다.


예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열정 과다로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상태


그 나이대에 걸맞은 귀여움이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가끔 그러려고 하는 걸 막느라 힘들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자소서를 쓸 때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자소서를 읽는 사람에게 나는 가상인물이다.


자소서는 양(quantity)을 자랑하는 수단이 아니다. 질(quality)을 자랑해야 한다. 잘하는 게 많아서 자랑하고 싶은 게 많은 마음? 너무 이해한다. 나도 체력 좋고 사교성도 좋고 똑똑하고 부족한 거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쓰고 싶었다.


이때 되새길 것은 자소서를 읽는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나는 거의 가상 인물이다. 그런 가상 인물이 이것저것 다 잘한다고 하면, ‘그래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 사실 자소서를 읽지도 않는다. 보거나 스쳐 보거나 할 것이다. 그때 중요한 것은 첫 문장, 첫 문장부터 이어지는 몰입감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하나의 메시지를 잘 잡아서 담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다. 내가 어떤 목표를 잡았고, 어떤 태도를 갖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따라서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당신의 조직에 기여할지를 쓰면 된다. 물론 말이 쉽지 충분한 훈련을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그 이야기만 하기에도 글자수가 부족하다.


둘째, 콘센트에 맞는 플러그를 꽂아야 한다.


자소서를 받고 면접을 하는 곳의 9할은 지원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지원자에게 기대하기보다는 지원자가 주장하는 역량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미션이니 비전이니 하는 것들이다. ‘우리 필요한 거 있는데 그게 너한테 있어? 너 여기 와서 잘할 수 있어?’를 물어보는 것이다.


열정이라고 다 같은 열정이 아니다.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열정, 안팎으로 뛰어다니는 열정이 다르다. 소통도 다 같은 소통이 아니다. 외부 고객과의 소통, 팀원들끼리의 소통이 다르다.


플러그가 일자 모양인데 원형 플러그를 꽂으면 그게 꽂힐까? 110v 콘센트에 220v 플러그를 꽂으면 그게 꽂힐까? 금칠을 한들 꽂힐까? 안 꽂힌다.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랑 안 맞네요.


그러니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안 맞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를 뽑으려는 곳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자기소개서 문항에서의 출제의도를 파악해서 맞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명쾌하게! 명쾌하게 쓰는 건 다시 위의 ‘가상인간’ 파트로 돌아간다.


셋째, 백 마디 말보다 행동 한 번이 중요하다.


‘잘할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과 ‘나는 예전에도 이렇게나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잘했어요. 그러니까 댁 내 조직/회사에 들어가서도 잘하지 않겠어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후자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사례를 중심으로 귀납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귀납적 증명도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니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 즉 성격이나 태도만을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 한 번이 중요하다. 내가 어필하고픈 성격이나 태도가 묻어나는 행동 경력을 말해야 한다.


조금 더 넣자면(사실상 필수), 나의 행동과 행동에 따른 성과, 깨달음까지 담아야 한다. ‘갓생 삽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고, 주 3회 이상 운동을 하고, 매주 책을 한 권씩 읽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중에선 당연히 후자가 답이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을 했더니 월 수익이 500만 원이 되었습니다’라고 덧붙인다면? 이건 무조건 후후자가 답이다. 우리가 들어가고자 하는 곳은 대체로 ‘성과’를 기대하며 우리를 뽑기 때문이다.


마치며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은 마냥 불편하고 어렵기만 한 작업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중간중간에 따먹은 과실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타인에게 어필할 만한 글쓰기를 연습하는 귀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렇게 주절주절 글 쓰는 건 자기소개서에 비하면 참 쉽다. 그때 그 마음에 비하면 참으로 평화롭다. 그래서 귀한 기회라 할지라도 굳이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건 맞음. 원래 남한테 해주는 조언이 제일 쉽고 가벼운 것임.


다들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D군 참 괜찮은데 꼭 뽑아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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