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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Oct 14. 2022

찬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화하고 있나요?

진짜 비판적 사고를 한다면

요즘은 다른 사람의 말에 기꺼이 찬성하고 동의를 하는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똑똑해 보인다. 생각 없이 동조하는 건지 아닌지는 대화를 할 때 자연스레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 사안에 대해 같이 생각하려는 의지가 느껴지면 대화의 상대방인 내 입장에서도 고마운 마음, 이 사람과는 좀 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양질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서로 기분 좋은 결론을 내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이 사람이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할 때 찬성이나 동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긴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가능성이 전혀 열려있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대화는 참 소모적이다.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여튼 비난할 거리를 찾으라는 말로 잘못 받아들인 사람이 많다. 일상 속 대화, 회사에서의 회의, 온라인상의 댓글 등을 막론하고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나도 비판적 사고가 뭔지는 잘 모른다. 하여튼 몇몇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함께 좋은 결과에 이르는 것이 대화의 목적인데 그 중요한 목적은 어디론가 던져버린 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상대를 비난하며 더 강한 논리로 찍어 눌렀다는 승리감에 젖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


그들은 공격적이거나 심드렁하다. 상대의 허점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고, 뭔가 발견했다 싶으면 쥐 잡듯이 달려든다. 굳이 안 넣어도 될 비난조를 넣는다. 이성과 논리로 합의에 이르러야 할 일을 악감정으로 전환한다. 대화가 산도 아니고 화산으로 간다. 또는 그냥 관심 자체가 없다. 마치고 나면 ‘이게 맞나? 내가 지금 뭘 하고 온 거?’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없던 관심이 번쩍 들게 하는 게 내 몫이고 역량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대부분의 일은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있고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점도 있다. 당연히 어느 정도야 잘못된 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허점을 찾아서 더 실한 점으로 바꾸려고 만났는데 허점을 후벼 파서 일 전체에 더 큰 구멍만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짜 비판적 사고를 한다면 상대의 의견에 옳은 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찾아간 상대방이야 모르겠고, 나를 찾아온 사람들을 대하기 전에 생각한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네(호기심 갖기).
이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자(경청하기).
같은 의견이 아니더라도 맞는 말이라면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의견이 다른 부분도 친절하게 말해야지(참여와 찬성에 대한 의지 다지기)!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 역시 허점을 마음먹지 않으면 쉬이 반대론자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긴 하지만, 명심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표현을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설득하는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상대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반박을 하더라도,

“아니, 그게 아니라~”

로 시작하는 말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정도로만 운을 띄워줘도 ‘오, 이 사람은 같이 이야기해나갈 마음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박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고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 어떻게 보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또한 동의를 할 부분은 명확하게 동의한다고 좋다고 표현한다. 상대가 방금 전 내 이야기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하나만 짚어줘도 날 선 마음이 누그러지는 기분이다. 더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몸이 앞으로 들썩거리게 된다.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에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잘 써먹으려고 한다.


사실 모든 대화의 시작은 관심인데, 상대방의 의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그 대화의 90%는 성공한 것이다. 그런 느낌은 대화에 참여하는 당사자 모두가 느끼게 된다. 기왕 하기로 한 대화, 기왕 내기로 한 시간,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로 만들려면 찬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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