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없음을 노래하는 아티스트처럼 살아가길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했던 노래가 있다. 어느 아티스트에게 노래를 듣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게 할지를 정해주고 노래를 지으라 한다고 하자. 이별의 아픔을 떠올리며 진한 공감을 하게 할 노래, 듣자마자 사르르 웃음 짓게 된 노래, 마스크 안으로 나도 모르게 립싱크를 하면서 힘을 불끈 내게 하는 노래. (노래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노래는 많다.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노래를 지으라는 미션을 어떨까? 잘은 몰라도 쉬운 미션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노래가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악동뮤지션의 'PLAY' 앨범이 나왔다. 모든 노래가 소중한 앨범이었다. 하나하나 표현이 어찌나 주옥같은지! 내 표현은 주옥같지 않지만 하여튼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하는 풋풋한 멜로디와 노랫말 투성이인 앨범이었다(물론 그 이후의 모든 앨범을 사랑하고 있다).
그중에는 ‘소재’라는 노래가 있었다. 소재? 내가 아는 그 소재?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날 좋은 날 킥보드를 타고(?)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 같은 발랄한 리듬으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요새 마음만큼 생각이 안 따라줘
의욕은 넘치는데 소재가 다 떨어졌네요
내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 줄 분 없나요
전엔 익숙하던 게 쉽게 안 떠올라
두 손에 잡히는 게 없어 난 끝인가 봐요
내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줄 분 없나요
노래를 만들 마땽한 소재가 없는 걸 소재로 쓰다니! 그래,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지. 이렇게 열려 있어야지. 노래를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주위에 흔하디 흔한 곳에서
너를 발견하겠지 그리곤 안녕하겠지
워어 워어어 워어어어어어
워어 워어어 워어어어어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네가 내게 오겠지 yeah
주위에 흔하디 흔한 곳에서 소재를 발견하고는 ‘안녕’ 할 거라는 말도 참 예쁘다. 이건 마치 순수한 초등학생이 아기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분위기다. ‘왜 이제 왔어!’ 하지 않고 ‘안녕’이라고 하는 마음은 얼마나 여유가 있는 걸까? 주위에서 발견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또 얼마나 확신이 있는 걸까? 결국 찾아낼 것이니까 답답한 이 상황도 이 노래를 부르는 마음으로 무던하게 지나가겠다는 평화가 느껴진다.
손을 높이 들고 HEY 눈을 크게 뜨고 HEY
특별한 무대를 꿈꾸고 있는 사람 all say HEY HEY
손을 높이 들고 HEY 아껴둔 너만의 걸 보여봐
SHOW ME WHAT YOU HAVE YOUR OWN
긴장하지 마 괜찮아 맘이 두근두근 거리면 거기가 내 자리야
Be where you should be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찬혁이 하고 싶은 거 하지 마’ 하는 밈이 유행한 때가 있었다.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꾸밈새와 행동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나는 ‘다 해~’ 파였다. 진짜 멋지다고 생각했거든. 생각해 보면 ‘멋있다’ 보다 ‘멋지다’가 어울린다. 멋이 거기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찬혁이 본체와 사고에 착 붙어서 어우러 ‘져’ 있다.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졌다. 유쾌한 공상과학 소설 속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오글거리든 말든 보는 이들에게 얕고도 깊은 자극을 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찬혁이 소재가 없는 것을 소재로 쓴 것이 정말 소재가 없어서였는지, 소재는 충분했지만 그 마음을 알거나 목격해서 쓴 건지는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자신을 포함해 소재가 없는 사람들, 어떤 이야기를 꺼내놔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맘이 두근두근 거리면 거기가 우리의 자리라고 이야기하는 게 멋지다.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그때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울림이 있다. 모든 걸 노래할 수 있다는 믿음, 자신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끈기를 가진 이 아티스트는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뭉근한 메시지를 준다. 있어야 할 곳에 있기 위해 있어야 할 곳을 지키며 스스로를 믿어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