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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주 아니고 양반이었어

재밌게 살았어요

by 잘 사는 진리

얼마 전 자소서를 봐주다가 대입 때 썼던 자소서를 다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낯 부끄러웠습니다. 잘난 척 범벅이더라고요. 아닌 척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 ‘나 잘할 수 있어요!‘ 하는 걸 어필하고 싶었나 봐요. 그렇지만 덕분에 오늘 글감이 생겼습니다.


자기소개서의 도입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공주라고 불린 적이 없습니다. ‘양반’이었죠. ‘우리 손녀 양반일세 ‘. 항상 할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입니다.


레알 참 트루입니다(이거 아는 사람 옛날 사람). 저는 공주라고 불린 기억이 딱히 없어요. 엄마, 아빠도 공주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공주풍의 옷을 입은 기억은 물론 사진도 없습니다. 저는 늘 양반이다, 선비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선비 같다는 게 뭘까요? 자기소개서에는 시키는 거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들도 돌보는 뭐 그런 느낌으로 쓰긴 했는데요. 그건 그때 어필하려고 쓴 거고, 지금 와서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선비력 배틀을 하기도 해요. 내가 조금 더 잘 논다고 자랑하는 건지, 아니면 상대가 더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늘 그렇듯이 도대체 선비 같다는 게 무엇인지를 사례로부터 추정을 해보려고 합니다.


주로 이야기하는 게 뭐가 있을까요. 제 학창 시절 최고의 일탈은 기숙사 담을 넘어 이마트에 가거나 카페베네에서 딸기 빙수를 먹고 온 일이었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술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어른이 되고서도 클럽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은 뭐 하고 살았냐, 무슨 재미로 살았냐 물어보기도 합니다. 나름 재밌었습니다만.


저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과(過) 사회화가 된 상태를 선비 같다고 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착한 거랑 달라요. 이상한 똥고집이 있습니다. 그냥 법이나 도덕과는 또 다른 규범, ‘안 되는 것들’의 집합을 만들어두고 있는 거죠. 이래야 돼, 저래야 돼, 이건 안 돼, 저것도 안 돼, 하고 스스로 검열을 하곤 합니다. 제가 정해놓은 규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1이라면 그 규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받는 스트레스가 10입니다. 넘어가면 저승인 요단강의 물길을 알아서 터놓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선비라는 이미지에 맞게 고루한 구석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꼭 어떠어떠하게 놀아야만 재밌게 노는 건 아니잖아?’ 하고 믿고 있긴 해요. 그것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원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입니다. ‘선비 같은 나에게 취한다~’까지는 아니긴 한데, 비슷하겠죠? 오은영 박사님 말씀에 따르면 사람은 지 잘난 맛에 산다 하니까요.


스트레스만 받는 건 아니고요. 그게 저를 조금이나마 더 잘 살게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별다른 재능이 없어요. 그래서 성실해야 합니다. 아니면 못 먹고살아요. ‘성실하게 살아야 돼!’ 하는 생각으로 부지런을 떨기도 하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돼!’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 일을 탐색하고, ‘돈보다 중요한 게 반드시 있어!’ 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선비는 무슨, 한량을 동경하는 어중이떠중이일 뿐인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불량하기도 하고 욕심을 부릴 때고 많고요. 어차피 평범한 소시민인데 뭘 캐릭터를 부여하고 앉았나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을 줄도 알아야죠. 그것 자체가 저의 믿음입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을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요. 그래야 조금 더 재밌게 살 수 있거든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역시, 고리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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